2020. 03. 10_#비행일기
대부분의 교통수단이 그렇듯 비행기도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오늘은 전국적으로 강풍을 동반한 비바람이 불고 도착지 공항에는 안개가 잔뜩 껴서 기상이 좋지 않았다. 김포공항 국내선 공항의 전광판에는 '결항' 또는 '지연'이란 문구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우리 항공사만 결항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될 경우, 결항된 항공사의 승객들이 우리 회사 쪽으로 넘어오게 돼있다. 결국 다른 승객들까지 모두 태우고 비행을 시작했다.
비행 내내 많이 흔들리기는 했지만 가까스로 도착지 공항의 상공으로 와서 착륙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하강을 하던 비행기가 다시 날아오르는 것 아닌가. 도착지 공항에 낀 안개로 시정(視程:목표물을 명확하게 식별할 수 있는 최대 거리, 대기의 혼탁도를 나타내는 척도)이 좋지 않아 착륙 시도에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았다. 이후 다시 한번 착륙 시도에 실패를 했고, 기장님으로부터 인터폰으로 연락이 왔다. 소식을 들은 나는 좌절했다.
기장님은 시정이 너무 낮아 활주로가 안 보여서 착륙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우리 비행기는 출발 공항으로 다시 되돌아간다고 덧붙였다. 나는 알겠다고 말했다... 알겠다고 말은 했지만... 앞으로 우수수 쏟아질 컴플레인이 걱정되었다. 실제로 컴플레인은 지상의 비처럼 마구 쏟아져내렸다.
한 승객은 결혼식의 축가를 맡았는데, 이렇게 다시 되돌아가면 어떡하냐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내 팔뚝을 움켜잡았다. 심지어 상공이라 친구에게 연락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KTX를 타고 가는 건데, 왜 무리해서 비행기를 출발시켜가지고 자신을 곤경에 빠트리냐며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다른 한 승객은 어머니의 49재인데, 자신만 빼고 온 가족이 다 모였을 거라며 어떡할 거냐고 내게 되물었다. 어머니 가시는 길, 편안하게 못 보내드린 책임을 지라고도 말했다. 또 다른 승객은 부모님이 도착지 공항에 마중을 나와있는데, 연락할 방도가 없겠느냐고 물었다. 착륙 시도를 3번이나 실패하고 돌아가는 터라 시간은 배배배로 늦어져있었다.
나는 아예 고개와 허리를 펼 생각도 하지 않고 계속 굽신거리며 읊조렸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어떻게든 모시려고 했는데... 날씨가 갈수록 좋아지질 않아서... 정말 죄송합니다." 날씨를 탓하면 애초에 왜 출발했느냐는 질타가 돌아올 뿐이었다.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여전히 굽신거리며 뒤쪽의 승객에게도 도착 후 안내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나아가는데 이런 소리가 들렸다.
"고개 들어요."
멈칫한 상태에서 살짝 고개를 드니 한 부부가 나를 바라보며 다시 이렇게 말했다. "고개 들어요, 어쩌겠어요. 날씨가 잘못인걸." 두 분 다 이목구비가 동글동글하니 인상이 좋은 분들이었다.
내게 고개 숙이길 강요한 승객도 있었고 고개 숙이라 가르친 회사도 있었지만, 고개를 들라고 말한 손님은 처음이었다. 나는 직감했다. 앞으로 비행을 하다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며 고개가 숙여지려고 할 때, 이 장면이 분명 떠오르겠다고. 그것만으로도 적대적이고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든든한 기분이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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