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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자까 Oct 10. 2021

내 첫 책의 편집자님을 생각하며...♡

책 계약만 하고 나면 원고가 늦을 일은 없을 줄 알았다. 내 책을 내줄 출판사, 내 투고 원고를 택해줄 편집자님만 만난다면 하라는 대로 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작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마감 때문에 썼어요", "이번 달에 마감만 4개라..." 난처하다는 듯 팔자 눈썹을 만들며 이렇게 말하는 작가를 볼 때 '마감'이라는 게 뭔가 간지나면서도, 작가를 작가로 보이도록 만들어주는 성질로 느껴졌다. 방구석에서 홀로 쓴 글을 온라인에 올리기만 할 뿐, 내겐 마감이라는 게 여태껏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게도 마감할 원고가 생기면 괜히 마감, 마감~ 거리며 다른 작가들처럼 "마감이 뭐라도 쓰게 했다"라고 말해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알고 있을 정도로 잘나가는 작가들과 나의 차이가 바로 이 마감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점이었다. 작가들은 마감 때문에 뭐라도 써낼 수 있었다지만, 나는 마감이 있어도 기어이 늦고 마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내 딴에는 피치 못할 사정이었음을 주장하고 싶지만, 돌이켜보면 그 정도까진 아니었고 아무튼 이런저런 사정으로 몇 번씩이나 편집자님에게 메일을 늦게 보낼 수밖에 없거나 죄송하다는 말로 범벅된 편지를 쓰기 일쑤였다. 쓰라는 원고는 안 쓰고 구구절절 장문을 써서 보내는 내게 편집자님은 이렇게 말했다.


"조급하게 생각하면 글도 잘 안 써지잖아요. 아직 급할 거 없으니까요, 작가님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먼저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요. 기분 좋은 상태에서 써서 보내주세요. 저는 글쓴이의 마음이 글에도 묻어난다고 믿는 사람이라서요."


나는 이 말을 철석같이 믿고 대부분의 시간을 신나게 놀다가 아주 조금씩 글을 써냈다. 그러다 9월에는 공부해야 할 시험이 있어 180도 모드를 전환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독서실에 짱박혀 있었다. 내가 다닌 독서실은 하루 종일 있어도 좋을만한 곳이었다. 탁 트인 창으로 햇살이 가득 들어왔다. 시멘트 뷰인 우리 집에선 볼 수 없는 채광이었다. 고등학생 때 다녔던 독서실처럼 어두컴컴한 방 안에 조명 하나 켜놓은 모습을 상상했는데, 요즘 독서실은 웬만한 카페 못지않았다. 책상은 창 바로 앞에 놓여 있어 공부하다 너른 창 너머 바깥 풍경을 구경하며 한 번씩 숨 돌리기에도 좋았다. 매일 똑같은 추리닝에 크록스를 신고 머리나 벅벅 긁어대며 수험생들과 같은 공간에서 지냈다. 그렇게 이번엔 공부한다는 핑계로 글이나 삽화 작업에 손도 대지 못했다. 편집자님은 기꺼이 기다려주시면서도 시험 이후 떨어질 벼락 치기를 대비하라고 호기롭게 말씀하셨다. 


삼 주 정도 공부하고 나서 시험을 보았다(그냥 보기만 한 수준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시험을 마치자 나는 한강에 가고 싶어졌고(왜 가고 싶었을까...?), 바로 한강으로 직행해 한참을 걷고 뛰었다. 뻐근한 다리로 집에 돌아와 마라샹궈 매운맛을 평소에 먹던 1.5단계에서 3단계로 높여 먹어치운 다음 뻗어버렸다. 

다음날 오전, 시험 때문에 밀린 원고 작업은 진행하는 대로 보내드리겠단 메일을 편집자님에게 보냈다. 오후 늦게서야 카페로 가 되지도 않는 내용을 끄적거리는데 편집자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작가님, 메일은 잘 받아보았는데요. 뭔가 울적하신 것 같아서요. 저도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좋아하는 사람이랑 전화 한번 유쾌하게 하고 나면 한결 기분이 나아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전화 한번 드려봤습니다. 오늘은 뭐하고 계세요?"


나는 편집자님의 목소리가 반가웠고, 기다렸다는 듯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공부한다고 미룬 일들은 많은데 시험은 망친 것 같으니 풀이 잔뜩 죽어버린 속내를 마구 털어놓았다. 편집자님은 "아이구, 작가님 고생하셨겠네." 같은 말로 나를 달래주었다. 친구도 아닌 편집자님에게 찡찡거리는 내 모습이 부끄러우면서도 편집자님이 달래 주는 게 또 은근 기분이 좋아 멈출 수가 없었다. 편집자님에겐 나 말고도 어르고 달래야 할 작가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하면 아득해지면서도 다시 또 기대고 이해받고 싶어지는 걸 보면, 편집자님이 우리 작가들의 왕엄마나 왕언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전화를 끊고 한결 기분이 후련해진 나는 '역시 우리 편집자님 최고...>.<'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다가 아차, 싶었다. 나도 물어봤어야 했는데! 편집자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오늘은 무엇을 하셨는지, 커피는 몇 잔이나 마셨는지!!! 편집자님은 매번 나의 근황과 상태를 살펴봐주시고, 적절한 위로의 말과 웃음을 건넨다. 나는 속마음을 쏟아냈다가 편집자님의 애정 어린 말을 주워 담기 급급한 나머지 편집자님의 안부나 마음은 살필 겨를도 없었던 것이다. 물어봐야지, 다음엔 꼭 물어봐야지 다짐을 하지만 아마 다음번 통화에서도 나는 편집자님에게 다독여지고 있을 듯하다. 


한 번은 내가 강연을 하느라 편집자님과의 통화가 늦게 이루어진 적이 있었다. 뒤늦게 한 통화에서 편집자님은 어김없이 내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물어보셨다. 오늘은 강연을 하느라 전화가 조금 어려웠다고 답했더니 편집자님이 그런 작은 일 하나라도 모두 자기에게 말 좀 하라고, 자랑을 하라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책을 낸 이후 홍보 활동을 하는데 고려하거나 참고하기 위함일 테지만, 앞으로 본인을 나의 매니저처럼 생각하라는 편집자님의 말에 난 쿡쿡대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내게 크고 작은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아이가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 백 점이 매겨진 시험지를 자랑하듯, 나는 편집자님에게 카톡으로 다다다 메시지를 보내며 링크나 사진을 남겼다. 


"저 이번에 여기 나가요."

그러면 편집자님은 이렇게 답신을 보내왔다. "작가님 이력에 도움 되는 것이라면 전 무조건 응원합니다요. 책 계약하고 나서 작가님에게 좋은 일들이 생기는 걸 보면, 아무래도 우리 책이 잘 되려고 하나 봅니다." 

그 말 한마디에 배시시 웃음 지으며 종일 마음이 붕 떠있기도 했다. 


이토록 다정한 말을 건네고 마음을 보여주는 만큼, 그간 나는 편집자님이 틀림없이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정작 편집자님은 좋아하는 마음을 잘 모르겠다며 지금은 연애도 하기 싫다고 흘리듯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의아해서 그저 웃기만 했는데, 이젠 알 것 같다. 편집자님은 이미 너무 많은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함께하는 작가들과 나직한 웃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뜨듯한 정서로, 자신이 작업하는 책을 앞에 두고 하루 일곱 잔에서 다섯 잔으로 겨우 줄였다는 커피를 마시며 일하는 걸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어서라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한가운데에 퐁당 빠져있어 오히려 이게 좋아하는 마음인지 아닌지 살필 겨를도 없는 것 아닐까. 좋아하는 마음과 좋은 기운을 가지고 그것을 나누어주기 바빠 오히려 좋아한다는 감정 때문에 주저한 적 없을 사람, 내게 편집자님은 그렇게만 보인다. 그런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작가님. 고민고민하다가 메일 쓰지 마시고, 언제든 제게 전화하거나 가볍게 카톡 하나 주세요. 작가님의 연락이라면 밤에도, 주말에도 환영입니다. 작가님이 제게 연락하는 걸 어려워하는 게 보여서 그래요. 저는 진짜 작가님이라면...!"


이런 말을 들으면 아무래도 편집자님에게 나만큼은 특별한 사람일 거라는 기분이 들곤 한다. 아무렴 편집자님도 모든 작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특별하게 여겨지는 느낌이란 때론 정신 못 차릴 만큼 설레는 것이기에 나는 매번 편집자님 때문에 속절없이 물컹해져 흐느적거리고 만다. 그러니까 결론은 내 첫 책의 편집자님이 우리 편집자님이어서 나는 무척이나 마음이 놓이고 든든하다는 것인데, 그만큼 편집자님의 마음은 답답하고 무거워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글을 써내는 것으로 보답해야겠지만, 아무래도 가끔씩 편집자님에게 어리광 부리는 짓을 기어이 하고야 말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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