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님과 처음으로 만난 날, 편집자님은 이런저런 질문을 내게 하셨다. 그땐 너무 긴장해서 대답도 잘 못하고, 진짜 별 헛소리를 다한 것 같다. 그런 나를 두고 그저 웃으며 들어주다 중간중간 긴장할 것 없다고 말해준 편집자님에게 그때부터 반했던 게 분명하다.
출간을 앞둔 요즘은 책 마무리 작업으로 편집자님과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만큼 편집자님과 편해졌다고 느낀다. 원고 작업으로 바쁘기 이전에 편집자님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나중엔 제 전화만 와도 무서우실 겁니다" 다행히도 아직은(?) 편집자님의 연락이 매번 반갑다. 원고나 삽화 작업이 덤으로 얹어지는 건 두려워도, 편집자님이란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연락 자체는 즐거운가 보다. 하루는 뚱목이가 편집자님과 카톡하는 내 모습을 보더니 웃기다는 듯 물었다. "나랑 연락할 때도 그렇게 실실 웃어?"
편집자님의 연락을 놓치기 싫기도 하고, 편집자님이 물어보는 말에 바로 답하고 싶어 양치하거나 똥을 쌀 때도 전화가 오면 즉각 받았다. 양치할 때는 편집자님이 내가 양치 중이란 걸 알아차리시곤 "이젠 그래도 제가 그만큼 편해졌나 봅니다, 다행이에요"라고 말했는데, 똥 쌀 때는 목소리만 울릴 뿐 다른 소리가 나지 않아 모르셨던 것 같다. 변기에 앉은 채로 10분 가까이 대화했으니 모르셨던 게 분명하다. 화장실에서 폭소를 하다 나온 나를 본 뚱목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편집자님을 처음 만난 날을 생각하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날 편집자님은 만남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내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어보셨다. 계속 헛소리를 내뱉으며 꼬일 대로 꼬였다는 표정이 된 내 얼굴을 읽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속내나 다 털어놓고 편히 일어나라는 뜻 같았다. 그 지경이 되자 나는 뭐라도 해야 한다는, 이렇게 편집자님을 보낼 순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 되었고, 가까스로 내뱉은 말이 이랬다. "제가... 승무원 중에서는 제가, 제일 재밌게 써요!"라고.
무슨 자신감으로 저렇게 말할 수 있었는지, 방금 저 대사를 쓰면서도 창피한 마음에 얼굴까지 확 열이 올랐다. 그래도 승무원 직업 에세이를 쓰는 사람이 그런 자신감 하나 없이 비행 일지를 모아 책을 낸다는 것도 독자들에게 예의는 아닐 터! 제일은 차치하고서라도 '재미있게 잘 쓰는 승무원 작가', 부끄럽지만 이건 마땅히 내 글에 대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 그러했는데... 김혼비 작가님의 『다정소감』을 읽고 다시 와장창 무너지고 말았다. 글을 읽는데 예능 프로를 보는 것처럼 웃음 터지게 만드는 김혼비 작가님도 전직 승무원이었다는 걸 이 책을 읽고 알았다. 그간 다른 책이나 글에서 승무원 얘기를 보지 못해 몰랐었는데...! 승무원이었다니! 근데 김혼비 작가님이라니! 김혼비 작가님이 승무원이었다니!!!
『다정소감』에는 딱 한 꼭지가 승무원 교육생 시절의 이야기로 실려있다. 김혼비 작가님의 글답게 재밌고 웃기면서도 뭉근한 감동이 느껴지는 글이었는데, 나는 읽으면서 등골이 서늘하기까지 했다. "아, 이 작가님이 승무원 책 썼으면... 난 망했다..." 읽는 내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내 책이 1월에 나올 예정이니, 이제 막 신간을 낸 작가님이 그전에 승무원 에세이 책을 내실리는 없겠지. 내가 얼른 먼저 내버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