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즐거운 나의 점심시간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매일 매일이 빡칠 때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점심시간이다.
회사에서 빡친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욱하는 마음을 꾹꾹누르고 가끔 혼자 이런 상상을 한다. 당장이라도 달려나가 나를 힘들게 하는 그 놈의 팀장에게 욕 한 번 시워하게 퍼부어주고, 팀장이 미처 반격할 틈도 주지않고 사직서를 얼굴에 냅다 던져버리는 상상. 푸하하하하하. 휘둥그런 눈으로 놀래서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을 한심한 듯 비웃으며 유유히 사무실 문을 박차고 걸어나가는 그런 상상. 아오~생각만해도 짜릿하다. 그러나 그런 잠깐의 달콤한 상상도 잠시, 누군가 또 뒤에서 나를 부르기 시작한다.
박대리
너의 이름이 아닌 나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건방진 우과장이 또 무언가를 급하게 요청한다. 우과장 저 녀석은 무슨일만 있으면 꼭 저렇게 급한척 설레발을 치며 유난스레 티를 낸다. 분명 자기가 또 무언가 까먹었거나 뭐가 되었는 아무일도 아니라는거에 내 손모가지와 남은 판돈 전부를 건다. 심호흡 한 번 하고 애써 없는 웃음기를 쥐어짜내거 짜내어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넵! 확인해보고, 알려드릴게요!
파이팅 넘치는 말투로 시원스레 대답을 하고. 바로 메일을 열어 뭔일인가 확인해본다. 캬~사원 시절에도 잘 안쓰던 '넵'이라는 예의바르고, 파이팅 가득한 말을 대리인 요새 오히려 더 많이 쓰는 듯 하다. 혹시나해서 확인해보니 역시나 지난 번 보낸 자료를 못찾겠으니, 다시 좀 보내달라는 내용이다. 다시 또 가슴 속 한가운데에서 오전 잠을 자고있던 욱이 이모가 욱하고 올라오려한다. 그래도 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길래 후다닥 자료를 찾아 재삘리 보내준다. 그래도 나름 항의의 표시로 메일에 아무런 내용도 쓰지않고, 그대로 포워딩키를 눌러버렸다.
메일을 보내고나시 벌써 점심 때가 다가온다. 때마침 담배피러 나가는 우리팀 옆 자리 김대리를 보고 담배도 안피는 나는 바람이나 쐴 겸 해서 황급히 따라 옥상으로 올라간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하는 데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한참을 머뭇거리다 겨우 한 마디 던진다.
김대리, 오늘 점심 뭐먹을래?
괜히 이상한 말을 했다가 저 능구렁이 같은 넘이 팀장에게 어떤 뒤통수를 칠지 몰라 순간 움찔해서 쓸데없는 점심 이야기를 안전하게 꺼냈다. 사실 나는 점심을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서는 1%도 궁금하지 않다. 어차피 먹고 싶은 것을 생각해봤자 누군가의 알레르기로 인하여, 또 누군가가 못먹는다는 이유로, 기타 등등의 이유로 결국엔 팀장의 결정에 따르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언젠가부터 나는 점심을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기 시작했다. 먹고 싶은 것이 있을 때는 애써 따로 약속을 잡거나, 정말 너무나 먹고 싶을 때는 약속이 있다하고 혼자 조용히 먹고온다. 어쨌든 먹는 것 같이 찌질한 일로까지 스트레스 받기는게 내 자신이 너무 싫어 그냥 뭐가 되었든 점심메뉴는 대세에 따르기로 마음먹은지 이미 오래 전이다.
결국 그렇게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되었고, 늘 그렇듯 팀장이 한 마디 꺼낸다.
그나저나 오늘 우리 뭐먹지?
역시나 조금도 고려 할 의미도 가치도 없는 질문이 나온다. 우리팀 모두는 늘 그렇듯 또 아무 말이 없다.
왜? 다들 입맛이없어?
재차 물어보는 팀장의 말에 눈치보던 우리팀 막내가 귀염귀욤한 말투로 한마디 한다.
간만에 시원하게 쌀국수 어떠세요?
쌀국수를 좋아하는 나는 속으로 왠일로 이 녀석이 기특해보였다.
그럴까요? 저도 어제 술을 먹었더니?
그래서 조용히 점심메뉴는 무조건 대세를 따르리라는 나와의 다짐을 참지 못하고, 희망섞인 한 마디를 막내의 말에거들어 보았다. 그러자 늘 그렇듯 팀장은 미안한 듯 한 마디 건낸다.
쌀국수? 아...나 어제 먹었는데...
팀장의 말에 또 다시 욱하는 마음과 함께 우리 팀은 다시 정적이 흐른다.
째각째각...10분
아까운 점심시간을 메뉴를 고르는데만 벌써 10분이 지나갔다. 결국 한참을 생각하던 팀장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간만에 콩나물밥 먹을까?
다들 진작에 그러던가라는 욱하는 표정들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듯 웃며 이야기한다.
넵, 간만에 맛나겠네요!
회사 지하 식당으로 줄지어 걸어가는 내내 속이 안좋다. 왜냐하면 난 콩나물이 너무 싫기 때문이다. 어릴 때 부터 안먹었다. '왜하필 콩나물이야! 난 진짜 콩나물이 싫다고!!!'라고 속으로 몇 번을 소리친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집 메뉴에 콩나물이 아닌 제육덮밥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분노와 불만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말한다.
제육덮밥
제일 먼저 주문을 하고, 난 이내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그리고 네이버와 다음의 실시간 검색어를 확인하고, 오지도 않는 카톡을 계속 뒤적거린다. 나름의 가오라면 가오이다.
잠시 후 각자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고, 점심시간 시작이 30분이 지난 후에야 우리 팀은 겨우 첫 숟가락을 입속으로 넣기 시작한다. 잠시 또 얼마 간의 침묵이 흐른다. 침묵도 잠시 막내가 한 마디 화제를 던진다.
스파이더맨 보셨어요? 나 어제 봤는데 진짜 잼나던데요?
어제 개봉한 최신 영화를 본 이야기를 자랑스레 이야기한다. 그러자 우리팀 미녀 나대리가 한 마디 거둔다.
그래요? 난 생각보다 별루던데
내가 꼬여서 그런지 은연 중 자기도 보았다고 자랑하듯 들린다. 여자친구도 여자사람친구도 없고, 극장 간 지가 2002년 월드컵 전으로 기억하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는 그저 배부른 사치일 뿐이다. 난 그냥 어서 내가 너무도 보고싶은 스파이더맨이 극장에서 빨리 내려와, 빨리 다운로드나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이렇게 점심시간은 중반을 향해 흘러가고 있고, 영화이야기는 무르익어 이제 영화 속 배우의 여자친구 이야기로까지 진도가 나아간다. 그나저나 오늘 따라 우리 팀 막내는 영화가 진짜로 재미있었는지 쉴새없이 이야기한다.
아~이거 진짜 이야기해도 되나 모르겠네...스포일인가?
영화의 시작부터 영화의 하일라이트까지 밥풀까지 휘날리며 모두 다 이야기한다. 진짜 저 입을 당장에라도 콩나물로 틀어 막고싶었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엔딩은 비밀이라며 남겨주는 센스에 너그럽게 대인배답게 용서한다.
'그래, 정망 드럽게 고맙구나!'
어쨌든 이렇게 영화 이야기와 함께 점심식사는 끝나고, 모두들 계산대 앞에서 누군가가 먼저 계산하기를 바라보며 머뭇머뭇거린다. 왠일로 오늘은 팀장이 기분이 좋아서인지 맨 앞으로 나선다.
오늘은 내가살게!
라며 카드를 꺼낸다. 물론 법인카드이다. 이 때가 우리 팀의 팀워크가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팀장님! 잘 먹었습니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외치며 이렇게 또 나의 즐거운 점심시간은 끝나간다.
그나저나 내가 누구냐고? 누구가는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라며 회사라는 지옥에 당당히 맞써 싸워 가오를 자켜 나가겠지만, 애초에 돈도 없고, 가오도 눈꼽만큼도 찾알 볼 수 없는 나는 이 지긋지긋한 회사생활에 빡칠 만큼 빡쳐있는 만년 대리 박대리이다.
그럼 다음 시간에...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