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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내일도맑음 Aug 04. 2020

"문이 안 열려요."

산책 생각

  축축 처지는 요즘이다. 힐링이 필요했다. 여유가 없어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힐링을 해야 했다. 근처 가장 자연 친화적인 카페에 갔다.


  삭막하고 답답한 우리 집에서 벗어나 나무와 꽃들로 가득한 곳에서 커피를 마시니 몸과 마음이 녹색 에너지로 가득 차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가득한 것은 마음만 아니었다. 나는 카페인에 참 둔하다. 몇 잔을 마셔도 심장이 벌렁대거나 잠을 못 자는 경우가 없다. 다만, 카페인은 나의 이뇨작용을 촉진한다. 참 별스럽고 민망하다. 방광이 찼다는 신호가 왔으니 화장실로 갔다.     


  소변기에서 볼일을 보는데 안쪽 대변기 쪽 문이 덜컹거렸다. 화장실에서 누구라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 국롤이자 예의기에 아무 대응 없이 내 일에 집중하였다. 그런데 덜컹거리는 소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났고 이번엔 목소리도 들렸다.     


"문이 안 열려요."

작고 떨리는 목소리였다. 크게 잡아도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는 아이의 목소리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인까지 산 우리 집은 20층이었다. 당연히 매일 엘리베이터를 탔으며, 그 좁은 공간 속에 1분여를 기다리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던 초등학교 저학년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 갇혔다. 나에게 일상적이고 너무나 익숙한 공간이었던 엘리베이터가 낯선 공간이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덜컹하는 소리와 불이 꺼지며 매일 읽었던 거울 밑에 광고글, 습관적으로 잡았던 테두리 손잡이, 20층을 누르기 위해 밟았던 발판이 무서웠다. 영화 장면처럼 불꽃을 내며 떨어지는 엘리베이터와 산소가 부족하여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내 모습이 떠오르면서 더욱 공포스러웠다. 아직 작은 아이가 그 좁은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다 겨우 손을 뻗어 툭 튀어나온 노란색 버튼을 눌렀다. 전화 가듯 신호 소리가 들렸다. 곧 딸깍 하며 어른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세요?"


  짧은 질문이었지만 그 목소리가 얼마나 나를 안심시켰는지 아직도 생각난다. 침실에 걸려있는 드림캐처처럼 내 머릿속 상상을 다 날렸다. 내가 상황을 설명하자 그 목소리는 금방 사람이 간다면서 걱정하지 말라며 나에게 계속 말을 붙였다. 대화하면서 나는 더 안정되었고 편안한 마음으로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화장실 문 뒤의 아이가 그때의 나와 같을 것이다. 나는 말을 걸었다.      


"혼자 들어가 있니?"

"어떻게 들어갔니?"

  아이는 혼자 들어가서 문을 잠가봤는데 안 열린다고 대답했다.


"아저씨가 곧 열어줄게"

"걱정하지 마"

"문 조금 옆에 서볼래?"

  말을 계속 걸면서 급히 내 일을 마무리했다. 문을 가볍게 밀었다. 묵직하니 안 열렸다. 성인 남자가 한 번에 못 열 정도니 아이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한 번 더 힘을 주니 그제야 열렸다. 아이는 다행히 편안한 표정으로 나왔다. 침착하게 기다린 아이가 대견했다. 침착한 아이의 표정과 모습에 내가 다 뿌듯하였다. 대견한 마음에 한 마디 더 했다.     


"손은 씻고 나가야지"




  듣는 이를 안심시키는 목소리와 말이 있는가 하면 듣는 이를 더욱 불안하게 하는 목소리와 말이 있다.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고 불안을 더 크게 하는 말과 목소리다. 목소리를 낼 때 상대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쉽게 내뱉을 때 이런 경우가 많다. 불안에 불안이 겹치면 상황을 정확히 보지 못한다. 상황을 정확히 보지 못하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 말을 내뱉는 사람에겐 큰 영향이 없을지 몰라도 듣는 사람에겐 큰일이 생길 수 있다. 이번 일은 내가 다행히 그 아이를 안심시키고 상황을 해결하였지만 다른 상황에서도 안심과 신뢰를 줄 수 있는 말과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상대를 깊이 이해하고 신경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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