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가게 만드는 힘은, 감정이다

결핍은 부족함이 아닌 원동력이다

by 이서언


언어를 시작할 때,

그리고 끝까지 가보겠다고 마음먹을 때

나를 밀어붙이는 건 의지도, 재능도 아니었다.

그 과정을 통과하며 끊임없이 일어나는

감정의 층들이었다.


어떤 날은 뿌듯한 자존감이 올라왔다.

새로운 단어를 제대로 발음했을 때,

상대방이 내 말에 미소 지었을 때,

내가 전하고 싶은 뜻이 통했을 때의

그 작은 성공감.


하지만 더 많은 순간, 나를 움직인 건

답답함, 분함, 억울함 같은 감정들이었다.

원하는 말을 찾지 못해 가슴이 답답했고,

내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상대가

오해할 때면

끝없이 좌절감을 느꼈다.


나는 왜 늘 그런 감정에 더 오래 머물렀을까.

아마도 내 생각을, 신념을, 철학을

상대에게 전하고 싶고

또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가 피드백하며 이어지는 관계를

진심으로 원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나를 자극했다.

그래서 나는 다양한 관용어를 외우고,

상황에 맞게 말하려 애썼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생각을 듣고, 행동을 살피며 지냈다.



학교생활 속 영어


초등학교 시절, 다양한 학교 활동 속에서

늘 영어가 부족해서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 언어의 벽 때문에,

나는 내가 있는 그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특히 초등학교 6학년,

필기체로 단문을 적어오는 숙제가 있었는데

밤새도록 그 낯설고 복잡한 글자들을 따라 쓰던

푸르스름한 새벽 공기와

작은 어깨의 긴장이 아직도 선명하다.

또래들과 다르고 싶지 않았고,

나도 ‘이들과 같다’고 느끼고 싶었다.



대학 시절 일본어 수업


대학 때 ‘일본 영상 기본 이해’ 수업은

짧은 옛 일본 영화를 본 후,

즉석에서 감상문을 써야 했다.

“이 표현, 뭐라고 해야 하지?”

“이 단어의 한자는 뭐였더라…”

스마트폰 하나 없는 시대, 전자사전을 두드리며

어색한 문장들로 글을 썼던 나.

그 책상 위에 놓인 내 손은 늘 무력했고,

늘 부족함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세계 여행과 중국어


최근엔 유튜브로 세계 여행, 특히

중국의 소수민족을 찾아가는 영상들을 보며

중국어에 대한 갈증이 더욱 커졌다.

중국어 선생님과 함께

티베트 여행을 꿈꾸며 다짐했다.

“말을 더 잘하게 되면,

더 많이 보고, 더 깊이 느끼고,

더 멀리 갈 수 있을 거야.”



이 모든 모습들이

내 언어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었다.

결핍은 부족함의 시작이지만,

결국 그것이

결과물의 원동력이 되었다.


나는 그 과정 속에서

나 자신을,

상대를,

그리고 우리를 알아갔고,

그 감정들이

나를 끝까지 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야 깨닫는다.

원하는 장면이 있고,

닿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사람은 강해진다.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면,

우리의 언어는 계속 나아간다.

사람과 이어지고 싶은 마음,

그리고 나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우리가 다루는 언어를

조금 더 상냥하게 만든다.

그렇게 우리의 말은 자라난다.



오늘의 노트


결핍이 나를 무너뜨릴 거라고

믿었던 날들이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결핍은 내가 끝까지 가게

만든 가장 깊은 감정이었다.


함께 생각해 볼 질문


• 나는 어떤 감정이 나를 끝까지 가게 하나요?

• 언어를 통해 꼭 닿고 싶은 ‘사람’ 또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 내가 언어를 통해 더 부드러워지고, 더 강해진 순간은 언제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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