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살, 팀장이 되었다.
그 사이 회사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입사하고 퇴사를 많이 했지만 회사는 굉장히 큰 호재였다.
100억 이상 매출을 달성했다며 전 직원이 해외로 여행을 가기도 했고
공격적인 마케팅과 경영으로 교육계의 새로운 루키라고 언론마다 언급되었다.
그렇게 1년 동안 무슨일인지는 모르지만
왠지 모를 성취감과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일했다.
그리고 나는 또 연봉협상의 길에 놓여졌다.
한 차례 요란한 연봉협상을 경험했지만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고 요구하고 싶은 만큼 요구했다.
회사가 이렇게 잘되었다면 당연히 직원들에게 잘해주겠지.
그때도 나는 어렸다.
어느날, 본부장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이림님, 회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나요?"
연봉협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질문을 하는 본부장의 의도에 갸우뚱하다가
생각해보니 당시 회사는 업무강도 높은 회사여서인지
직원들이 대부분 1년 정도 다니고 많이 그만뒀었다.
"발전할 수 있고 가능성이 있는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저는 더 성장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보상받고 싶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나는 연봉을 제의했다.
"받아들이시기 어렵다면 저는 더 다닐 의향은 없습니다."
아쉬울 것 없는 당찬 직원처럼 얘기했지만
속으로는 너무 센척했나? 라는 생각이 잠깐 들면서 목이 막혔다.
더 말을 잇고 싶었지만 어쩐지 그때는 그 회사를 믿고 싶었다.
나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회사가 아닐까 라는
가슴속의 작은 믿음으로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평소에도 침착하고 조용한 성격이었던 본부장은
다른 이야기는 더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이고 알겠다고 답했다.
센척했던 연봉 협상 대화를 나눈 지
얼마 안되어 본부장은 다시 미팅을 제의했다.
"이림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대신, 새롭게 팀이 만들어질 예정입니다.
그 팀에 팀장직을 맡아주시면 됩니다."
당연히 연봉이 줄어서 협상을 요청할 줄 알았는데
그대로 받아들인 사측에 어안이 벙벙했다.
우선 감사합니다 라고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하고 나왔다.
곧 나의 팀장직이 발표되었고 모두가 축하한다며 술자리를 가졌다.
축배를 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는 황당한 상황은 시작되었다.
나는 팀장인데 팀원배치가 기가 막혔다.
계약직 여직원 1명과 아르바이트생 1명이었다.
해야할 일은 수백가지인데 계약직인 여직원에게 단순 업무 이외에 다른 업무를 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그녀에게 업무를 분장하기 위해
의중을 물어보니 그녀는 야근을 하면서 일을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계약 기간으로 묶여있었던 것 뿐이지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지금도 충분히 업무가 많다고 일을 고사했다.
야근수당도 없고 정규직도 아닌데 그녀에게 더 일을 줄 수가 없었다.
아르바이트는 말그대로 아르바이트인데 무슨 일을 더 해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나 혼자 직원이고 나 혼자 팀장이었다.
아. 회사에 또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