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퇴사

by 태이림

회사에 그렇게 또 당한(?) 나는 지난 날의 보상으로

연봉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연봉이 늘어난 만큼 업무가 늘었다.


일일 매출보고를 해야하는데 매출이 줄어들거나

경쟁회사에서 새로운 상품이 나오면

새벽에도 일어나 출근해서 새로운 상품을 기획했다.


온라인 교육회사는 상품을 판매하는 이벤트 시간이 중요하다며

물리적으로 말이 안되는 시간에도 상품이 보여지기도 했다.

그런 시간이 이상하다기보다 당연한 것처럼 나는 몰입되어 있었다.

모두가 그렇게 일을 했었고 나는 어쩐지 그게 당연한 일인것 같았다.


그렇게 일에 파묻혀 살던 중 어느 날 문득 이상했다.


'나 지금 뭐하고 있지?'


분명 교육 일을 하고 싶다고 4년동안 열심히 하던 전공을 박차고 나왔는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교육이 맞는 건지 아닌 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들만큼은 아니어도

또래에 비해서 나쁘지 않은 연봉을 받고 있었다.


나름 교육쪽에서 인지도가 있는 회사에서 팀장도 달았고

나의 이런 직함과 직장생활을 뿌듯해하고 만족스러워했던

부모님의 기대에도 계속 부응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사실 먹고 사는 건 별게 없는데

내가 너무 허황된 꿈을 꾸고 있나? 이게 맞는건가?

머리속에 한번 든 생각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른을 앞두고 나는 불안했다.

요즘은 시대가 많이 달라져서 결혼과 출산을 지향하는 사회를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여자들의 결혼과 육아에 따른 '경력단절'이 흔하고 당연한 시대였다.

그래서 결혼이 중요했고 내 주변에 많은 친구들이 그 당시에 결혼했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일을 하나씩 이뤄가고 있는데

나는 어쩐지 직업 하나조차도 이뤄지지 않은 채, 그대로 멈춰있는 것 같았다.


두 차례 이직과 경력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전문성을 물었을 때,

어쩐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스스로가 전문가라는 생각이 들지 못했다.


그저 다급하게 밀려오는 일을 처리하기 급급한 중소기업에서 자라났던 중고신입은

계속 이렇게 중고경력직으로 자라고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아무리해도 이렇게 있다보면 나는 전문적인 영역을 갖지 못한채

언젠가는 일자리를 잃을 것만 같았다.


지금의 회사는 교육회사지만 나는 교육 일을 하지 않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교육이라는 상품을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아름답게 꾸미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답게 꾸민 상품으로 매출을 올리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보니

이 교육이 정말 좋은 것인지 이 교육으로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갖는지

어쩐지 그 교육에 나만 빠져있는 느낌이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만들면서 홍보를 하는 부분도 무척이나 중요하지만

나는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교육을 하고 싶었다.

교육을 통해 경험과 동기로 인한 의미를 나누고 싶었다.


나는 교육 일이 하고 싶다.


매번 면접을 볼때마다 그렇게 나를 괴롭히던 교육학 전공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내가 교육학을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본부장에게 미팅을 요청했다.

미팅을 요청한 내 모습이 한껏 비장한 표정이었는지

본부장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림 팀장님, 현재 팀을 이끌어가기 힘든 거 알고 있습니다.

다음달에 인원을 충원할 수 있도록 사원 모집을 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이 온다해도 하기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시켜야하고 다독여야하는 것에서

버거움이 있습니다. 저는 누군가를 관리하기에 아직 어리고 배울 것이 많습니다.

저를 믿어주신 대표님과 본부장님께 죄송하지만 저는 다음달까지만 하고 그만두겠습니다.

대학원에 가서 좀 더 공부하고 싶어졌습니다."


"대학원이요?"

"네, 대학원이요."

"회사에 계시면서도 대학원에 다니실 수 있습니다. 총무팀에 확인해보겠습니다."

"지금도 6시에 퇴근을 못하는데요?"


그때 나는 너무 솔직했고

나의 당돌한 멘트에 본부장님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저는 지금 일이 많다고 본부장님께 투정하거나 회사 시스템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스스로의 행보를 스스로가 결정하는 과정 중에 하나인 퇴사를 회사에 말씀드리는 것 뿐입니다.

저는 다음달까지만 하고 그만두겠습니다."


연봉협상 때만큼이나 솔직하고 단호한 내 모습에 나의 퇴사에 대한 소문을 삽시간에 퍼졌다.

사무실이고 탕비실이고 식당이고 하다못해 화장실까지 보는 사람마다 나를 말렸다.


너가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느냐

여기 나가서 그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냐

이제 우리 나이에는 현실적으로 생각해야하는 거야

모아놓은 돈이 있으면 시집을 가야지 무슨 대학원을 가냐


지금은 그 말이 무슨 말인지 크게 와닿지만

그때의 나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이었다.


알빠노를 시전하고

나는 무모하게 내 맘대로 어느 날처럼 또 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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