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동처방을 전공한 체육학사였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지만
당시만 해도 운동처방은 쉽지 않은 전공이었다.
영어가 능통한 경우, 해외로 취업하는 것이
좋은 선례였고 한국에서는
병원, 프로팀 닥터 등에서
근무를 선호했지만 일자리가 많지 않았으며
석사를 졸업한 우수한 소수의 학생들만 취업이 가능했다.
그래서 취업은 보통
1. 자격증을 취득해 강사로 근무
2. 학사장교로 입대
3. 대학원 입학
4. 다른 길을 찾는 것으로 크게 구분되었다.
1번 후보의 탈락)
자격증을 통해 강사로 근무했었지만
내가 누굴 가르칠 사람이 아니라는 건
금세 알게 되었다.
2번 후보의 탈락)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은 군대를 못 간다.
3번 후보의 탈락)
대학 등록금도 겨우 냈는데
대학원은 지금 당장 갈 돈이 없다.
4번 선정) 뭐라도 다른 길을 하자.
우연히 교양과목으로 시작해서 국가자격증이
나온다고 해서 취득했던
"평생교육사" 자격증이 있었다.
하다 보면 답이 나오겠지. 놀 순 없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
그때의 나는 왜 이런 것들로 채워졌는지
진짜 사서 고생해서
지난날에 통곡으로 복받쳤었다.
그렇게 4년 동안 열심히 배운 전공을
뒤로하고 평생교육사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나의 행보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대기업에서는
예체능 졸업생은 서류조차 받지 않았고
면접마다 교육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취업이 급해진 나는 거의 모든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고
한 원격평생교육시설에 입사하게 되었다.
좋은 연봉은 아니었지만,
경력이 쌓이면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20대였다.
사회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