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협상

by 태이림

학점은행제를 운영하는 원격평생교육시설은

평가인정 학습기관으로 학점인정 교과목을

교육부(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 인가를 받아서 운영했다.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여성들이 많았는데

대학을 다니다가 그만두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기에는

나이나 현실적인 부분으로

어려워했던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대학을 다니다가 그만둔 사람들의 경우,

기존 들었던 학점과 새롭게 들은 학점을 합쳐서 학위로 취득하도록 설계해 주는 일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사람들의 경우,

맞춰서 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설계해 주는데

보육교사와 사회복지사의 과목이

중복되는 것이 많아

해당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것으로 홍보했었다.


해당 원격평생교육시설은 기존에 5과목으로

이루어졌던 기관으로 많은 과목을 보유해야

그만큼 많은 고객을 유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과목 인가가 필수적인 사항이었다.


과목 인가를 위해 동영상을 제작하고

만드는 과정에 직원들의 살신성인이 갈려나갔다.

낮에는 상담을 하고 저녁에는 스토리보드를

제작하고 PPT를 만들고 교재를 검수하거나

촬영 시나리오를 확인하는 등 6개월이 넘도록

야근이 계속되었다.


야근 수당은 없었고 희망 고문은 많았다.

인가가 되면 만족스러운 연봉과

직급도 주고 직원도 더 뽑겠다고 했다.

열심히 하면 크기는 달라도 언제든

대가가 주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회초년생이었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고

기존 교과목을 포함해서

21개의 과목이 인가되었다.


서로가 축하하며 기쁨을 나누었지만

생각보다 기쁨이 오래가진 못했다.

과목인가 이후에 나는

처음으로 연봉협상을 하게 되었다.


내 인생의 첫 연봉협상은 "빈 수레"였다.

그렇게 유난스럽고 소란스러운

협상은 처음 겪어봤다.


내 입장에서는 많은 고생을 했고

앞으로의 부흥도 있으니

이 정도의 연봉은 가능하겠지라고

생각해서 던졌던 금액이

그들과 맞지 않았다.


나는 당시 상사들의 연봉을 알지 못했는데

내가 요구한 연봉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고

큰 차이가 안 나서 더 충격이었다.


내 연봉 문제로

사장과 이사들 고성이 오고 가서

불편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기나긴 회의 끝에 내가 요구한 연봉의 10%를

삭감한 금액으로 계약서가 왔다.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 불편한 감정과 상황이 커질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때 생각했다.

사람의 생각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다 나와 같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협상" 이라는 단어 안에

수만가지 생각과 마음이 오고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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