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중학생이 되면서 처음 영어를 배웠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영어를 접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이전보다는 많아졌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번역을 잘할까요?
[ 이 글은 제 워드프레스 블로그에 올린 글을 조금 수정한 것입니다.]
사실 이 질문을 조금 바꾸어서 “한국어를 잘한다고 한국어로 글을 잘 쓸까요?”하고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번역은 언어에 대한 이해와 함께 이해한 내용을 글로 표현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작성한 글을 영어나 다른 외국어로 번역하는 번역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원문이 엉망인 글이 많다는 것입니다.
글쓰기… 정말 어렵습니다. 한국 사람이 한국어로 말을 한다고 해서 모두가 다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말로 글을 쓴다고 해서 모두가 다 글을 잘 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말하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영어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한국어 작문 실력이 엉망이면 좋은 품질의 번역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영어 실력뿐만 아니라 한국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됩니다.
예전에 번역업체에서 일할 때 간혹 대기업 직원들이 번역을 의뢰하곤 했습니다. 그것도 자비(自費)를 들여서요. 대부분 스토리가 비슷합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면 상사가 영문으로 된 문서를 던져주고는 이거 언제까지 번역하라고 맡기면 영어 실력이 나름대로 우수하다고 자부하는 사원은 그것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문서를 받아서 번역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번역이 쉽지 않고 며칠 동안 날 밤을 새도 진전이 없게 됩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번역업체에 번역을 맡기게 되는 과정을 밟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구글번역기의 기능이 많이 향상되어 구글번역기로 번역한 다음에 대충 말이 되도록 수정하면 굳이 번역업체에까지 맡기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설프게 번역된 문서를 수정하는 작업이 재번역하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예를 든 사례에서는 번역 품질이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대충 말이 되도록만 만들면 되지만 돈을 받고 하는 번역이라면 구글번역기를 돌려서 번역한 후에 수정하는 것은 시간이 더 소요될 수 있습니다.
번역이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는 실제로 해 보신 분은 어느 정도 이해할 것입니다. 꼭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만만하게 생각합니다. 번역을 맡기면서 간혹 ‘내가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없어서’ 맡긴다고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것이 올바른 마인드입니다. 잘 되지도 않는 번역을 할 시간에 다른 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 될 것입니다.
최근 번역 카페에 영자신문을 어려움 없이 읽으면 번역을 잘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올라온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럼 한국 사람이 한국어로 된 신문을 읽는다고 번역을 잘할까요?
번역을 잘하려면 물론 외국어 실력이 뛰어나야 하지만 우리나라 말로 글 쓰는 능력도 동시에 요구됩니다. 영어 실력이 부족하지만 한국어 작문 실력이 우수한 경우 영어에서 한글로 번역한 번역문만을 살펴보면 번역이 잘 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원문과 대조해보면 엉터리로 번역된 부분이 많을 수 있습니다. 영어 실력이 뛰어나지만 한국어 작문 실력이 부족하다면 읽기가 어색한 번역이 되어 클레임이 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외국어 실력만 있으면 번역을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여기에 대해 다루어보았습니다. 외국어 실력이 뛰어나다고 생각되시면 직접 번역을 한 번 해볼 것을 권해드립니다.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모르는 표현이나 어려운 표현이 나오면 생략하고 넘어가는 분들도 간혹 봅니다. 기술번역 분야에서는 그렇게 번역하면 클레임이 걸립니다. 직접 번역을 해보면 번역이 그리 만만한 분야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