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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Jul 28. 2018

“자신의 결점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


  자신의 결점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한가? 그저 ‘나에게는 결점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나에게는 결점도 있고, 장점도 있다’고 생각하는가? 단점이 있다는 생각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결점이 곧 나라고 동일시할 때 자기를 사랑하는 길이 막힌다. 나는 결점이 있기 때문에 가치 없는 존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될 때 자기를 사랑할 여지는 없다. 사랑에 명암이 있듯이 우리 개개인에게도 다양한 면이 존재한다.   


  모든 인간은 장점과 단점이 골고루 섞인 존재다. 그럼에도 잘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는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사실 쉽지 않다. 결점을 인정한다는 것은 가치 없는 인간임을 인정한다는 뜻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 부족한 점이 있어도 나 자신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나다. 그 독특한 비율의 배합 때문에 나 자신이 유일하고 독특한 개체가 되는 것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나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거울 앞에서, 평생 거부하고 저항해왔던 내 신체의 한 부위를 보면서 “그래, 너도 나야.”라고 말해보거나, 평생 거부해왔던 나의 어떤 성격적, 심리적, 외모의 특성을 똑바로 직면하며 ‘너도 나’라고 말해보는 것이다. 평생 내 것이기를 거부해왔고 이리저리 비틀어 없애려고 해왔던 부위에 대해서 말이다. 그저 그 모든 것이 나임을 인정하라. 처음부터 사랑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사랑하기 전에 받아들임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저 멋진 내 모습도, 마음에 안 드는 내 모습도 나임을 인정하겠다고 선언해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할 때 적절한 사회적 가면을 쓰며 그에 어울리지 않는 자기의 일부분은 감춘다. 징징거리고 싶은 유아적 태도,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모습, 비아냥대고 싶은 마음, 잘난 척하고 싶은 충동 등 성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가면 뒤로 억눌러놓는다. 이렇게 억압해둔 자아의 일부분을 융은 ‘그림자’라고 불렀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는 살아오는 동안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받으며 자아의 뒤로 숨는다. 성격 중 타인이 부정적으로 평가한 부분들은 자아로 통합되지 않고 억눌린 그림자가 된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이렇게 억눌린 성격의 일부분, 즉 그림자가 튀어나온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림자를 내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타인에게로 돌리는 ‘투사’다. 투사는 곧 ‘남 탓’이다. 사회에는 투사가 넘쳐난다.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혐오스러운 측면들을 사람들은 끊임없이 타인의 것으로 돌린다.   


  “저 사람 왜 이렇게 천박해? 저 사람 왜 이렇게 무식해? 저 사람 왜 이렇게 감정적이야? 저 사람 왜 이렇게 무례해? 저 사람 왜 이렇게….”   

  
   저런 모습이 내게 있다고? 인정할 수 없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도무지 인정할 수 없는 이유는, 내 안에 있지만 내가 결코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경계해왔던 모습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일면으로 통합하지 않고 있는, 타인의 것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 그림자다. 사람들은 곧잘 자신의 싫은 부분은 꼭꼭 감춰두고 다른 사람에게 혐오스러운 면이 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융에 따르면 혐오스러운 타인은 내가 부정하고 싶은 내 성격의 일부분을 갖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은 나의 그림자인 것이다. 부모와 사회에 의해 억눌린, 내가 억압해두고 표출하지 못하는 나의 못난 부분 덩어리다.   



  자아가 커질수록 그림자도 커진다. 빛이 커질수록 그림자가 커지는 것과 같다. 사회적으로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할수록, 긍정적인 면을 개발해갈수록 성격의 미성숙한 측면은 그만큼 억눌리기 때문이다. 억압하면 그림자는 더 극악을 떤다. 자기를 좀 알아달라고. 내가 나를 사랑할수록, 행복이 커질수록, 내가 사회적으로 성공할수록 내 성격의 일부분을 억압하고 있는 건 아닌지 기억하고 의식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타인에게서 나의 그림자를 발견했을 때, 어떻게 해야 될까? 혐오스러운 타인을 발견했을 때 할 일은 그림자를 자아에 통합하는 것이다. 통합이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마음으로 자신을 대하는 것이다. 내가 유능해도 좋고 열등해도 좋다고 믿는 것이다. 너무 싫은 타인을 발견했을 때, 타인을 수용하는 대신 나 자신을 수용해야 한다. 내가 싫어하는 나의 일면을 직면하고 내 것으로 인정할 기회다. 열등한 타인을 사랑하는 문제가 아니라 열등한 나를 사랑하는 문제이고, 어두운 나까지 끌어안을 기회다. 불편한 타인은 적이 아니라 스승이다. 내가 사랑하지 못했던 내 성격의 일부까지도 사랑할 기회를 주는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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