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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Aug 04. 2018

“애도를 두려워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법”

<그럼에도 나를 사랑한다> 9화

 

애도는 의미 있는 상실에 대한 정상적인 감정 반응과 회복 과정을 말한다. 애도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식이다. 충실하게 애도하기만 한다면 감정은 금세 우리를 떠난다. 그 어떤 감정도 충실하게, 집중적으로 애도하기만 한다면 정화될 수 있다.   


  감정이 충분히 정화되지 못하고 찌꺼기가 남은 것을 한恨이나 원怨이라 한다. 한과 원은 우리가 충실하게 애도할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다. 사회는 슬퍼하는 사람을 충분히 울게 놓아두지 않는다. 사람들은 얼마간의 시간을 정해놓고 슬퍼한 뒤, 그 시간이 지나면 현실로 돌아와야만 옳다는 듯이 산다. 정해진 기간이 지나고도 슬퍼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듯이 행동한다.  

 

  감정을 다루는 우리 사회의 방식은 주로 억압이다. 화가 난 사람들에게 너무 흥분하지 말라고 말하고, 슬퍼하는 사람에게 더 이상 분위기를 흐리지 말라고 한다. 무기력한 사람들에겐 언제까지 그럴 거냐고 다그친다. 가만히 보면 스스로 감정에 빠져 있는 것을 경계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슬픈 감정에 빠져 허덕이는 모습을 보는 것조차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왜 다른 사람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는 것조차 참지 못할까?   


  슬픔에 빠져 오랫동안 통곡하는 사람을 보는 첫 심정은 대체로 ‘불편함’이다. 타인의 고통은 개인에게 불편한 감정을 일으킨다. 이유는 다양하다. 고통받는 타인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 나 역시 저런 고통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내 기분이 덩달아 나빠진다는 피해의식 등 이유는 셀 수 없다.   


  이렇게 불편함을 느낄 때 가장 쉬운 대처 방식은 외면과 억압이다. 우리는 타인의 슬픔을 외면하거나, 그만 좀 하라고 다그치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잘 모른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충분히 울게 해주는 것일 뿐임에도, 우리는 감정을 당장 어떻게 해버려야만 하는 척결 대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충분히 감정이 소화되고 나면 우리는 해방된다. 누군가 “울지 마.”라고 위로하면 오히려 눈물이 나는데, “그래, 계속 울어.” 하면 눈물이 쏙 들어갔던 적이 있을 것이다. 감정을 억압하지 않으면 울려고 해도 눈물이 안 나는 일이 벌어진다.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들은 언제나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자취를 감춘다. 상처에 대해서 충분히 이야기하고, 슬픈 노래를 충분히 부르고, 감정을 붙들고 충분히 울고 나면 우리는 상황을 받아들일 힘을 갖게 된다. 나에게 벌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다음으로 나아갈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무조건적 자기사랑의 핵심은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감정이 느껴질 때 없애려고 하지 말고, 나쁘다고 판단하지 말고 가만히 지켜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핵심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 나쁘다거나, 빨리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 데 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왜 화가 나는지 스스로 도무지 이해되지 않고 미성숙하게 느껴질지라도, 자신의 본능적인 그 느낌이 옳다고 믿고 가만히 직면해보자.   


  틀린 건 없다. 자신이 느끼는 것, 즉 감정 그 자체는 무조건 옳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감정과 함께 머무는 것이 건강한 애도다. 이 순간에 머무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행복 수행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코 하나에 집중하지 못한다. 도무지 내면과 조우할 틈을 주지 않는 분열된 행동이 일상화된 시대이기에 감정을 온전히 느낄 시간은 더더욱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일을 할 때만은 분석하는 과정에서 조금만 떨어져서, 더 원시적인 인간이 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비록 퇴행일지라도 진정한 의미에서는 퇴행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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