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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May 03. 2020

팔십살에 꿈을 이룬다면 성공인가. 실패인가.

나는 작가다 공모전

봄꽃보다 낙엽이 예쁠 때가 있다.

나의 글은 늦은 시작에 관한 이야기다.


 외할머니는 나이 80세에 작가가 되었다.


 그녀는 1936년생이다. 한국전쟁을 몸소 경험다. 외할아버지는 동네 오빠였고, 아들,아들,딸을 낳았다. 대구에서 소금 장사를 하셨다. 텔레비전에서 자주 나오는 레퍼토리지만, 어머니가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장사가 잘 되었다. 남부럽지 않게 중학교 생활을 하셨다. 하지만, 문제는 갑자기 번  돈이였다.

 큰돈을 벌게 된 외할아버지가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가세는 급격하게 기울어졌다. 유복하게 살다가 급격하게 가난해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삼촌은 집을 나갔다. 어머니는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스카이 대학교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하지만 공부에 손을 놓고 방황했다. 전쟁보다 더 심한 고통 속에서 외할머니는 혼자 굳세게 버티셨다. 되는대로 장사를 계속하면서 무너져 가는 집안의 대들보를 맨 손으로 잡고 버티셨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덧 9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셨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돌아가셨고, 혼자 남겨진 외할머니는 본인 딸 집에 들어와서 10년간 사셨다. 맞벌이를 하는 환경 때문에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외할머니와 함께 보냈다. 엄밀히 말하면 외할머니 밑에서 컸다.

 외할머니는 집안일을 하시고 나서 틈나는 대로 책을 보셨다. 눈도 잘 보이시지 않아 돋보기안경을 항상 책 볼 때마다 꺼내서 쓰셨다. 가끔씩 꾸벅꾸벅 졸기도 하셨다. 책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뭐든지 다 보셨다. 그리고 가끔씩 내게 도서관에서 책을 주문하셨다. 그럼 냉큼 빌려드렸고, 길면 한 달, 짧으면 일주일 만에 한 권을 다 읽으셨다.


 외할머니의 꿈은 작가였다고 했다. 자신만의 책을 쓰고 싶어 하셨다. 10대 때 짓궂게 말했다.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그럴 때마다 외할머니는 웃으시면서 ‘그래.. 하면 되지..’ 하셨다. 무일푼에 삼 남매를 맨손으로 키우고, 대학도 보내고 결혼까지 시킨 외할머니의 꿈은 현실 때문에 미뤄졌었다.


 그렇게 외할머니는 내가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대구 본가로 내려가셨다. 그리고 한동안 연락이 없으셨다가 소식을 들었다. ‘나 드디어 작가가 되었다’라고 하셨다. 시집을 낸 것이다. 이미 여러 공모전에서 수필과 시 분야에서 상을 몇 번이나 타시고 나서, 본격적으로 책을 출간하신 거다. 그때 나이 외할머니 80세였다. 외할머니의 작가 생활 시작은 80세부터 시작됐다. 조금은 늦은 시작이지만, 외할머니는 볼때마다 더 젊어진다. 정말이다. 눈이 더 맑아지시고 컴퓨터도 이제 제법 잘 다루신다. 컴퓨터는 70대때부터 배우셨다. 최근에는 카톡도 가입하셨다. 젊은손자들과 소통하고 싶다고 하셨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홀로 핀 단풍처럼 외할머니는 지금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맨날 조급증에 걸린것처럼 성공만을 꿈꾸는 나에게 조급하게 살지말라고, 천천히해도 된다고 인생으로 보여주신다. 참 인상깊다.




 어머니는 중학교 생물 교사로 20년간 일하셨다. 그녀는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생물이라는 과목은 내 적성과 맞지 않다... 그런데 우리 삼 남매를 키우기 위해 억지로 하셨다. 그렇게 20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어머니의 꿈은 ‘커플매니저’라고 한다. 쉽게 말해 중매쟁이다. 싱글인 남녀를 이어주는 일이다. 고귀한 일이지만 옛 말에 ‘중매쟁이는 뺨 세 번 맞는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쉽지는 않은 길이다. 작년에 교사를 그만두셨다. 그리고 커플매니저를 하고 싶다며 회사에 덜컥 취직을 하셨다. 그렇게 시작하셨다. 교사 시절에는 캐주얼한 옷을 주로 입으셨다면 커플매니저를 하시는 요즘 복장은 완전히 커리어 우먼이다.

 확실한 것 하나는 월급이 반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커플 매니저 월급은 기본급을 받고 커플이 성사되는 수만큼 인센티브를 받는 구조라고 한다. 생각보다 잘 안되시는 것 같고, 사내 정치로 힘들어하신다. 그래도 하기 싫었지만 억지로 하는 일을 했던 과거와 비교했을 때 어머니는 더 젊어졌다. 하고 싶은 것은 결국 하는 외할머니와 어머니. 피는 못 속이나 보다.


 행복한 운명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오늘도 일을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현실에 안주하는 삶도 나쁘지는 않지만, 자신의 꿈과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사람이 더 멋지다. 남과 비교하면서 투덜대기보다는 자신의 운명과 환경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덜컥! 시작해야 한다.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남이 가진 것만 부러워했다면 늦은 나이에 시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외할머니는 틈만 나면 책을 보시면서 글쓰기 체력을 비축해두셨고, 어머니는 알게 모르게 주선하면서 커플매니저의 자질을 만들고 있었다. 언젠가는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품고서 사셨다.

 지금이 내 인생의 골든타임이 아닐까. 모든 일의 시작은 위험하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우리도 여건이 되는대로 오늘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녀들의 늦은 시작을 위로 삼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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