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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Oct 06. 2020

삶은 주도권을 가지려는 나와 세상과의 밀고 당기기

우리는 우리네 인생에서 주도권을 쥐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우리는 삶의 주인이 돼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다.  정말이지, 진심으로 나도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고 싶다. 정말 멋지게 하루하루 살고 싶다.

 하지만,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심지어 주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슨 느낌인지도 모르며, 학교에서는 배우지도 못했다.



인생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부모님이 이끄는 대로 사는 삶 아니고, 친구들의 말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삶 아니다. 나의 선택 내가 책임지는 삶이다.



인생으로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조금 추상적이게 다가온다. 하지만 쉽게 예를 들어보자.


나는 개인적으로 '헬스'를 할 때, 삶의 주도권을 가지는 느낌이 든다. 헬스를 집중해서 할 때면, 내가 뭐라도 된 것처럼 거울 앞에서 팔에 힘을 줘본다(사실 아무것도 없다) 마찬가지로 '헬스'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하면 짜증이 난다. 짜증이 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청소'에서 삶에 주도권을 찾는 편이다. 무조건 쓴 물건은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안방에 가보면 가지런히 물건들이 정리되어 있다. 오랜만에 어머니 도와드린답시고, 내 방식대로 물건을 정리하다가 어머니가 두던 곳에 물건을 두지 않으면 어머니는 조용히 다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 정리하신다.

 어머니가 다시 정리하는 이유는 자신의 영역, 자신의 주도권이 빼앗기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 아닐까?



내 친구 한 명은 '옷'에서 삶의 활력을 찾는다. 옷이 곧 그를 말하며, 그가 곧 옷이다. 월급을 모아 비싼 옷과 신발을 산다. 그것도 새벽에 줄 서서 산다. 나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에게는 지극한 행복이다. 하나씩, 하나씩 구하기 힘든 옷과 신발들이 쌓여가는 것을 보며 그는 삶의 기쁨을 느낀다.


조금 오버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는 옷과 스타일을 통해 인생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뤄져 가는 느낌을 받는다. 즉, 삶의 주인으로 사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돈을 주지 않아도 찾아서 하는 것들이 있다. 사람에 따라 청소일 수도, 운동일 수도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그 삶주인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린아이에게는 달콤한 사탕이 인생의 전부일 수 있다. 그에게는 그것이 행복이요, 인생가진 느낌일 것이다. 그러니 먹던 사탕을 뺏으면 그렇게 서럽게 울지 않겠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한 요양 병원에서 실험을 했다. 한 집단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게 했다. 삶의 주도권을 빼앗은 것이다. 밥도 영양사가 주고 싶은 시간에 주고, 용변을 치워주는 것조차 요양사의 마음대로 했다.


다른 집단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딱 한 가지 활동을 허락했다. 바로 식물에 물을 주는 것이다. 자기가 주고 싶은 시간 때에 알맞은 물의 양을 선택해서 줄 수 있었다. 결과는 여러분의 예상대로다. 인생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사는 것은 이토록 중요하다.



스스로의 삶에 주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컨트롤하는 것이다. 휘둘리지 않는 삶이다.  나의 경우 매일 아침 일어나 명상을 하고 이불을 가지런히 갠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속에서 하나만이라도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주도권을 쥐려고 노력하자. 청소도 좋고, 운동도 좋다. 뭐든 좋으니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사는 느낌을 주는 것을 하라. 그제야 우리는  멋지게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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