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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Sep 13. 2020

나를 원하는 곳

우연히 들어간 곳이 유명한 맛집인 것 만큼 운 좋은 경우는 없습니다. 우연히(?) 산 주식이 오르는 것 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죠. 저에게 이것들만큼 기분 좋은 것이 우연히 들었던 강의가 깊은 울림을 주는 경우입니다.


군대에서 훈련을 받다가 들었던 강의였습니다. 강사는 PPT화면에 '정체성'이라는 단어를 보여주었습니다. 어김없이 '노잼'이겠구나 싶어 고개를 120도로 꺾어 취침 모드를 실시하려고 했죠. 하지만, 밤에 너무 숙면을 했는지 잠이 쉽사리 오지 않았고, 이왕 이렇게 된거 30분만 들어보자라는 속셈으로 게슴츠레 눈을 떴습니다




-여러분은 정체성에 대해서 완전히 잘못생각하고 있습니다.


-음?




저 또한, 당연히 정체성이란 것은 '내가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개개인마다 다를 것이라 알고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체성이란 단어는 듣기만해도 무겁고 졸리기에,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책에서 '자아 정체성'이라는 단어는 많이 봤었죠.




-정체성은 사회에서 부여하는 역할입니다. 경찰관의 정체성은 도둑을 잡는 것. 소방관의 역할은 불을 끄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 군인은 명령을 따르며,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너네는 군인이니까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고, 시키는 것이나 제대로 해' 라는 말을 예쁘에 포장하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지만,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내가 이때까지 '정체성'이라는 단어를 오해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으로 번졌습니다.



정체성은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저는 두 종류를 '자아 정체성'과 '사회 정체성'이라고 명명하고 싶습니다.'자아 정체성'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스스로가 처한 환경과 스스로의 성향에 맞게 만드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말하는 '정체성'이 뚜렷한 사람을 뜻합니다. 주변에 보면 미술을 하는 사람이나 음악을 하는 사람을 예로 들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오왠이나 오혁'의 노래를 들으면 색깔이 참 강합니다. 음색도 멋지죠. 듣자마자 '아! 이건 오혁의 노래다'라고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본인의 색깔, 음악 정체성이 뚜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사회에서의 정체성은 본인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교사의 정체성은 정해져 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가르칠 내용을 미리 준비하며, 필요한 행정업무를 하는 것이 교사의 정체성입니다. 여기서 자신의 정체성은 뒤로 물러나야 합니다. 교사의 역할과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할 일을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정체성만 고집한다면 이도저도 아니게 됩니다. 본인도 괴롭고, 가르침을 받는 아이도 괴롭고, 옆에서 지켜보는 동료들도 힘들 것 입니다. 이는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아이들이 힘들게 굴어도, 교사의 역할은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것입니다. 그게 교사의 정체성입니다. 쉽게 말해 그 직업의 역할이죠. 그 정체성을 무시하고 소홀히 했을 때의 결과는 참혹할 것입니다.




공무원의 정체성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


회사원의 정체성은 그 회사를 위해서 이익을 얻어다 주는 것.




정해진 역할 테두리 안에서 본인만의 스타일은 생길 수 있겠지만 직업의 정체성은 정해져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역할이 정해져 있는 것이죠. 그게 싫으면 그 직업을 선택해서는 안됩니다.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고 책임지기 싫은데 본인의 개인적인 정체성만 발휘하려 한다면 그 조직도 스트레스받고, 본인은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련 없이 그 조직을 떠나야겠죠. 그게 쉽지 않다면 자신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나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 전에 자신이 맡은 직업과 역할에 대한 '정체성'을 이해할 것.



자신의 직업은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뭘 요구하는지를 받아들인 다음, 나의 능력에 맞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회의 정체성에 따르되, 퇴근하고 나서는 개인의 정체성을 세우고 그에 맞게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그래야 회사에서도 스트레스받지 않고, 집에서도 자유롭지 않을까? 반대로 회사에서는 개인 정체성을 발휘하려 하고, 집에서는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강요하려 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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