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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Mar 03. 2021

컵라면 예찬

나를 위로하는 최고의 슈퍼푸드


예찬 : 무엇이 훌륭하거나 좋거나 아름답다고 찬양함.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 직장의 모든 동료들이 거리감있게 느껴지고, 그 직장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느낌이 들때가 있다. 한번씩 사무치게 외로울 때가 있다. 그렇다고 동네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하소연하기도 애매하다. 카톡 하기에는 편하지만 전화를 하기에는 조금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한 번씩 시간 내서 보면 반갑게 놀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속에 있는 감정과 고민들을 굳이 꺼내놓지는 않는다. 소문으로 퍼져 이상하게 왜곡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약한 모습을 보이기는 싫다. 친한 친구도 회식을 하는지 전화를 안 받을 때, 통화를 눌러 하소연을 할 때가 없을 때, 우리는 누구에게 위로받으면 좋을까.


바로 컵라면이다.


직장에서 외로움을 타고 집에 들어온 날, 발걸음은 무겁다. 그럴때면 얼큰한 국물이 당긴다. 괜히 따듯하게 나를 채워줄 것만 같다. 다이어트한답시고 항상 그와 이별을 약속하지만, 그래도 야식으로 컵라면만한 것이 없다. 봉지라면보다 만들기 쉽고, 설거지를 안해도 되니 일석이조다. 봉지라면보다 간편하고, 국물은 좀 더 진하다. 컵라면은 실패하기가 힘들다. 용기의 선까지만 물을 따르면 된다. 이것마저 실패하는 사람은 의지와 시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퇴근하고, 저녁까지 먹은 상태에서 컵라면을 먹기에는 부담스럽다. 하지만, 외로운 날에는 배불러도 먹고 싶은 것이 당긴다. 변명 같지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배부르지만 허기지다.


그때, 컵라면의 힘을 빌린다. 싸다. 조리 과정도 간편하다. 그리고 3분이면 완성된다. 빠르고 정확하게 나를 위로한다. 컵라면을 기다리는 3분 동안 어떤 유튜브를 볼지 고른다. 넷플릭스도 좋다. 힘든 나에게 이 정도 선물은 허락한다. 인스턴트가 몸에 안 좋은 줄은 우리 모두 알지만, 오늘은 괜찮다.


고소한 냄새가 올라올 때면 컵라면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마친다. 사정없이 뚜껑을 제거하고 나무젓가락을 쑤셔 넣는다. 이때 쇠젓가락은 분위기와 맞지 않으니 pass. 배고프고 허한 나머지 크게 한 움큼 집는다. 그리고 입을 벌리고 들어가려는 순간, 콜록콜록 기침이 난다. 국룰이다. 기관지가 안 좋으면 기침이 난다 등 각종 유언비어들이 난무한다. 안경에 김이 서리든 말든 면발을 입에 넣는다. 배부르다. 한층 세상이 풍요로워진다.


세상에 대부분이 나의 의지대로 되지는 않지만, 오늘 지금의 이 행복은 내가 선택하고, 내가 만들어냈다. 내일부터 다시 다이어트는 하면 된다. 오늘 이 슬픔은 컵라면밖에 위로해주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컵라면 비닐을 사정없이 뜯는다. 한 마리의 사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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