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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Jun 14. 2021

10년째 같은 소원만 빌어보았다.

어릴 적부터 일요일 오전이 되면 아버지가 온 가족을 데리고 절에 갔다.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어서도 교회를 가는 것보다 절에 가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종교가 불교라고 자신 있게 남들에게 말하기에는 불교를 잘몰라 그렇게 말하진 못한다.


 그래도 마음이 심란할 때나 고민거리가 생길 때면 절에 간다. 절에 가서 부처님을 가만히 보면서 앉아있는 편이다. 절을 할 때도 있었는데 무릎이 아파서 절은 잘 안 한다. 그래도 어릴 적부터 절에 가면 꼭 소원을 빌었다. 십 년째 비슷한 소원을 빌고 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게 해달라’라는 소원이다.


처음에는 ‘부자가 되게 해주세요’ ‘매력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처럼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빌었다. 그렇게 빌다 보니 막상 내가 부처님이라도 이처럼 개인적인 소원은 들어줄 리 없어 보였다. 다음으로는 ‘가족이 안 아프게 해 주세요’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아프지 말고, 하는 일마다 잘 되게 해 주세요’라고 빌었다. 이렇게 기도를 하고 나니 왠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남들을 위해 뭔가 한 것 같은 뿌듯함이 가슴을 충만하게 하였다. 요즘에는 남들의 복만 빌다 보니 나한테는 이득이 되는 것이 없어 보여서 남을 위한 기도를 쪼끔 하고 나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를 한다.

기도발이 먹혀서 그런지 몰라도, 가끔씩 크고 작은 깨달음들이 나에게 다가온다. 깨닫는 것은 지혜로워지는 길이다. 오늘은 ‘유 퀴즈’를 보다가 깨달음을 얻었다.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흑인 프랑스 친구에게 ‘고민’이 있냐며 물었다. 그러자 프랑스 친구는 ‘NO’를 단호하게 외친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건강하고, 자신에게는 할 일도 있고, 몸도 건강한데 무슨 고민이 있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소리가 ‘Life is beautiful’이라고 했다. 순간 그 친구가 나의 머리를 치고 갔다.


 고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그 친구는 인생에서 집중하는것이 달랐다. 사소한 고민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좋은 것,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했다. 그의 웃음은 찐텐이었다. 그가 가진 삶의 태도가 너무 부러웠다. 내가 바라는 웃음, 바라는 삶의 모습이었다. 지금 행복한 삶, 좋은 것에 더 신경 쓰는 삶, 과거와 미래에 갇혀있지 않는 삶이었다. 행복한 웃음은 편안한 마음 상태의 표현이지 않는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갑자기 바뀌면 죽는다. 대신 조금씩 바꿀 수는 있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 환경,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똑같은 김치찌개도 누구에게는 소중한 한 끼지만, 누구에게는 질리는 한 끼다. 누구에게 지금 하고 있는 공부는 미래에 대한 투자이고, 삶에 대한 희망이지만 누구에게는 매일매일 자존감을 갉아먹는 절망의 시간일 수 있다.


걱정과 고민에 집중할 필요가 없다. 걱정과 불안으로 인해 생기는 괴로움을 더 많이 느낀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시련이 닥칠 때마다 흑인 프랑스 친구를 떠올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진 것들, 좋은 것들에 집중하고 싶다. 그리고선 나지막이 중얼거리고 싶다. 라이프 이스 뷰티풀. 인생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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