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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Aug 27. 2021

음식점에서 메뉴판 가격을 보지않고 시키는 섹시함

자기만의 정의 만들어 버리기

나에게 ‘부자’란
음식점에서 메뉴판 가격보지 않고
과감하게 음식을 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성공의 기준은 모두 비슷하면서 다르다. 누구는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며 큰 굴곡 없이 사는 것이 성공이라 생각했고, 누구는 사업으로 큰돈을 벌어야 성공이라 생각한다. 사람마다 성취감을 느끼는 포인트가 다르고,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다. 중요한 것은 성공과 행복의 의미가 나로부터 나와야 하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기 힘들고, 한 달 공부했다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지도 못한다. 만약 운빨로 성공한다고 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무너질 것이고, 금방 바닥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도 어린나이에 성공하고 부자가 되고 싶었다.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었고, 친구들에게 떵떵거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성공은 가까이하려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서야 다 늙고 힘도 없을 때 성공하면 어쩌지라는 고민도 들었다. 맛있는 음식 먹을 소화능력도 잃고, 여행지를 걸어 다닐 힘도 없을 때 성공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싶었다.


성공이 멀리 있다고 느낀 이유는 내가 생각한 성공은 거창했기 때문이다. 등산에 성공하기, 헬스장에 가서 50kg 바벨 들기처럼 내 일상 속에 성공하는 것들은 우습게 여겼었다. 이 성공도 성공이였는데 말이다. 남들이 생각하는 성공에 빠져 허우적 댔던 것이다.


이처럼 성공과 행복의 기준은 다른데, 우리는 돈 많이 벌기, 유명해지기, 높은 지위 얻기처럼 성공을 단순하게 거창하게 정의한다. 그리고 심지어 그 성공은 나로부터 나오지도 않았다. 그러니 성공하고 싶어도 성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새로이 정의해보았다. 이때 남의 인정은 중요하지 않다. 내 인생이고, 내가 느끼는 즐거움과 네가 느끼는 즐거움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된다. 남의 인정까지 바라면 평생 성공은 맛보지도 못하고 인생을 마감할 것이다. 스스로 부족한 점에만 신경 쓰고, 단점만 메꾸다가 끝날 것이다.

‘돈, 행복, 성공’


우선 이 네 가지의 용어의 정의를 새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남의 내린 정의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거창하지도 않으며 소소하지만 확실하다. 조금 유치하기도 하다.


나에게 ‘돈이 많음’이란


‘음식점에서 돈 생각 안 하고 메뉴를 시키는 것’이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아무 음식점 가서 돈 생각 안 하고 그때! 먹고 싶은 걸 시킬 정도가 되면  ‘돈이 많은 부자’라고 축하파티를 열 것이다. 마침내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가끔씩 부자가 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1년에 한 번 정도는 과감하게 비싼 음식을 먹기 때문이다.


10억 부자, 50억 부자는 나에게 너무 추상적이고 멀리 있다. 또한, 10억 부자가 된다고 해서 행복할 것이라 보장도 없다. 말은 10억 부자인데 음식점이나 상점에서 궁색한 사람들도 많다.실은, 10억 부자가 되려면 50세는 넘어야 할 것 같기에 과감하게 포기한다. 포기하는 것도 용기다.


우리 월급에 식비는 한정적이다. 제일 만만하게 줄일 수 있는 것도 식비다. 이재용 아저씨도 하루 세끼 드신다. 부자라고 해서 다섯 끼씩 먹지는 않는다. 실제로 식비를 마음대로 지출할 수 있다는 의미는 그만큼 돈을 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튼 나에게 ‘부자’는 10억, 50억 부자가 아니라 ‘음식점에서 아무 음식이나 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나에게 ‘행복’이란


‘딱히 고민거리와 스트레스가 없는 상태’다. 예전에는 좋고, 즐겁고, 기쁜 일이 있어야 행복이라 여겼다. 그러니 하루 중에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행복한 순간보다 많았다. 심지어 하루 내내 웃지 않는 날도 있는데 그런 날 잠에 들 때면 ‘나는 행복하지 않네..’라고 스스로를 안타깝게 여겼다. 그래서 행복의 커트라인을 확실하게 내렸다. 괴롭지 않다면 나는 이 순간 정말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니 하루 중에 문득문득 ‘아! 나도 행복한 사람이네’라고 느끼게 되었다. 자연스레 웃음도 늘고, 삶에 만족감도 늘고, 감사한 것들도 늘어나게 되었다. 별게 다 기분 좋아졌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는 힘은 굉장했다. 행복은 주위에 널려있기에 찾기만 하면 된다는 성인들의 말씀이 맞았다.





나에게 ‘성공’이란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는 상태’이다. 나만의 성공을 정의하니 하루에도 몇번이고 성공한 사람이 되곤 한다. 아침에 3km 달리기를 목표로 하고, 어렵게 어렵게 3km를 완주한 날이면 뿌듯한 성취감이 몰려온다. 자부심이 느껴지면서 스스로를 성공한 사람이라 칭찬한다. ‘오늘 하루도 달리기 성공했네 -> 오늘 하루 목표로 한 것을 성취했네 -> 성공한 사람이네’


나의 경우 자부심은 스스로 하루에 목표로 한 것을 달성했을 때, 둘째로 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줬을 때 많이 느꼈다. 진짜 성공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실 이게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아침 6시 기상하기, 아침 운동하기, 오전에 할 업무 정해놓기, 점심에 먹고 싶은 것 참고 샐러드 식사하기, 퇴근하고 class101 강의 듣기, 주말에 책 보기, 글 한 편 몰입해서 쓰기, 그림 한 점 맛깔나게 그리기 등 손쉽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들이 내 주변에 넘쳐난다. 나에게 성공이란 이처럼 해야 되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들을 멋지게 해내는 것이다.


성공을 명문대 가기, 좋은 직업 갖기, 10억 벌기처럼 멀리 있고, 시간이 지나면 무덤덤해지는 것들로 정의하게 되면 만나기도 힘들고, 만나고 나서도 금방 허무해진다. 그리고 남의 성공을 빌려왔기 때문에 성취를 하고도 찐으로 행복함을 느끼기 힘들다. 큰 성공을 하고 나서도 삶을 하루하루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나는 10억을 벌면 행복할 거야, 나는 월 500씩 벌면 행복할 거야, 나는 대기업에 취직하면 행복할 거야’라고 조건을 정해놓은 행복은 죽을 때까지 맛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행복도 금방 지나간다.


사실 어찌 보면 남들은 비웃을 수도 있다. 너가 달성하지 못하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 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물으면 ‘맞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확실한 점은 스스로 돈, 행복, 성공을 정의하고 나서부터는 인생의 만족도가 급격하게 올라갔다. 가끔은 자기애에 취하기도 한다. 물론, 남이 안 볼 때 취한다. 예전 남들이 생각하는 성공에만 매달려있을 때는 느껴보지 못하는 충만함을 느낀다.


자신만의 성공과 행복의 정의를 내리면 ‘매일 행복하고 매일 성공’할 수있다. 하루하루 성공한 사람이니 미래에서 돌이켜 봤을 때 나는 과거에 성공한 사람이며, 앞으로 평생 행복할 자신감이 생긴다. 남이 보면 합리화지만 나는 이것을 삶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남들은 나에게 큰 관심도 없는데 뭐 어떠랴.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남들이 생각하는 성공과 행복론을  받아들이고 그 이상적인 모습을 향해 오늘은 열심히 사는 사람도 존중한다.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이 방법은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다. 오늘은 돈, 행복, 성공, 결혼, 우정, 사랑 등 추상적이고 어렴풋이 있는 개념들을 스스로의 말로 정의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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