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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Jul 17. 2022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아버지에 대한 단상


좋은 책은 시간이 지나고 다시봐도 볼때 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다. 

20대가 생각하는 나의 아버지와 내가 30대, 40대가 되었을 때 느끼는 아버지는 다를 것이다.

일단, 나에게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이다. 좋다는 것은 굉장히 주관적인 개념이다.


좋은 차라고 했을 때, 누구는 차의 외형을 보고, 누구는 차의 엔진을 보고, 누구는 차의 내부가 기준이 될 수 있다. 자기가 생각하는 좋은 차는 모두 다르다.


아이들 셋을 키우기 위해서 아버지는 얼마나 큰 책임감을 느끼셨을까. 그때도 두명 낳는 것이 일반적이였지, 셋은 좀 많았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와도 자식들은 쉬지 않고 먹고, 돈도 점점 많이 들어갔을 것이다. 부인과 아이들 먹여 살리려고 얼마나 고군분투 하셨을까. 얼마나 힘드셨을까. 짐작은 가지만 많이 와닿지는 않는다.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한 심정이다.



우리 아버지는 다정다감한 스타일은 아니다. 주말마다 놀아주는 아버지는 아니였다. 아버지 본인의 욕심도 있으셨고, 자식들 먹여살리느라 바쁘게 다니셨을 것이다. 


예전 대학교 다닐 때 주말에 학교를 거닐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이 캐치볼을 하고 있는 것이였다. 나에겐 굉장히 낯선 풍경이였다. 캐치볼을 하는 아버지와 아들을 보며 낯설었지만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아버지는 좀 엄하셨다. 어릴 때 모든 아버지가 우리 집과 비슷한 줄 알았다. 잘 못 한 것이 있으면 엉덩이도 좀 맞고, 한자는 매일 10개씩 외우게 시키고, 책을 읽게 하고 , 텔레비전를 못보게 하는 줄 알았다(텔레비전 프로는 9시 뉴스와 사극만 봤다. 대조영, 왕건...)




글을 쓰다 보니 옛 추억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가족들과 주말에 자연휴양림을 가는 것을 좋아하셨다. 어느 날은 가족 여행을 갔는데 아버지가 형에게 화를 냈었다. 


그 당시 형은 가족들과의 여행보다 친구들과의 시간이 더 소중한 사춘기 중학생이였다. 기억에 반항기가 한가득이였다. 내 기억에 입이 오리마냥 항상 튀어나와 있었다. 프로 불편러였다. 툭하면 짜증내고 부모님에게 대들었던 것 같다.


형이 자연휴양림을 갔는데 텔레비전만 계속 봤다. 아버지가 원하는 그림은 그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가족끼리 못다한 대화를 하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나무와 산을 보며 서로에게 따듯한 이야기를 하고, 저녁 노을을 보며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을 바라셨을 테다. 하지만, 형은 마치 청개구리처럼. 마치 싸우자는 것처럼 텔레비전만 봤다. 


아버지가 텔레비전을 끄면서 '알까기'를 하자고 했다. 형도 마지못해 툴툴거리면서 했지만, 누구나 상상하듯이 대충했다. 대충 틱틱,,, 아버지는 드디어 폭발했다.

여기까지와서 부모님 말 들어야지, 너 왜그렇게 삐딱선을 타니... 오죽하면 부모님도 그러셨을까. 그 당시 생각해보면 형이 좀 심하긴 했다. 나는 그래도 재밌는 척 했다... 팽이를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둘째인 나는 그것을 보고 '아, 저렇게 하면 부모님이 싫어하시는 구나, 나는 말을 좀더 이쁘게 해서 내가 원하는 탑블레이드 팽이 사달라고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이게 둘째들의 생존방식이다. 지금 생각하면 형이 고맙다. 모든 총알은 다 받아주었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 아버지의 스타일대로 우리에게 사랑을 표시하셨다. 그것이 사랑 표현인 것을 깨달은 것은 20대가 되어서다. 



사랑을 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주말이다. 강아지가 귀엽다며 엉덩이를 팍팍 때리는 것도 강아지가 느끼기에는 폭력으로 느낄 수 있다 이말이다. 


그 당시 아버지가 우리와 주말에 추억을 좀 더 쌓았으면하는 아쉬움도 든다. 시간이 지나니 아쉽다. 무뚝뚝한 아버지의 사랑 표현법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나라도 표현을 많이 해야겠다. 지금의 아버지에게 혹은 미래의 자식들에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사랑한다. 감사하다.


너무 앞만보며 살아오셨네. 어느새 자식들 커서 말도 안듣네. 아버지 슈퍼맨이야 걱정마.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이제 나와 같이 가요

PSY의 아버지를 듣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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