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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백합과 개

by 까마귀의발
나의 흰개

세상이란 넓고 험난한 바다같은 곳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은 그 자체로 한송이 백합꽃처럼 존귀하고 아름답다. 모든 것이 사라져가고 지나가 버리지만 그날 그때의 그 순간만큼은 우주 어딘가 누군가의 기억속에 영원히 살아서 숨다.


모든 맛과 느낌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초연하고 자유로워질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맛을 느끼기전에 초연해질수 있을까하는 의문이든다.


글은 현실의 언저리까지만 갈수 있을 뿐이지만 그런 기록조차 상황이 일단락 혹은 잠시라도 소강상태가 되어서야 남겨지고는 한다. 나의 2030때는 글을 쓰기가 쉽지았던 것이다.


나에게 유일한 글쓰기 조건이 있다면 그건 체험이다. 개의 귀여움과 뇌를 멈추게하는 듯 감미로운 백합의 향기와 진한 커피의 향미를 느껴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기억이 1초라도 있으면 된다.1초에 인간은 무의식중에 17번 생각을 한다고 한다. 1초도 없으면 아직 미진한거다.

산에가서 호랑이를 1초 본 뒤에 호랑이가 사라졌더라도 그 경험은 호랑이를 본것과 보지못한것의 차이를 만든다.


내가 20대때 넘치는 혈기를 주체 못하고 혼자 히말라야산 같은데 가서 3000미터쯤 고지에서 텐트치고 잘때 밤에 그 산에 사는 야생들소인지 호랑이인지 아무튼 커다란 현지동물이 찾아와 빛나는 눈을 보여주고 간 기억은 아마도 오래 이어질 것이다. 히말라야산은 커서 호랑이도있고 곰도있고 야생야크도 있는것 같고 그중 밤에 나에게 찾아온 동물이 어떤거였는지 알수는 없지만 '밤에 눈이 빛나는 조심성 많은 커다란 동물'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나의 산행은 기억에 남기에 충분했다. 그 이후로 나는 호랑이는 절대 텐트에서 혼자 캠핑하는 사람은 물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가끔씩 가는 커피집 사장님은 직접 로스팅을 하시지만 아직 블루마운틴이 왜 세계 3대커피에 들어가는지 이해가 안된다며 소신 발언을 하셨다. 이런발언은 나름의 전문성을 가진 발언이라 높이 평가하지만 아직 미진하셨다. 난 10여년전에 딱한번 블루마운틴의 진수를 맛보고서 블루마운틴이 3대 커피에 들어가는걸 이해하였다. 그런맛을 느낄수 있다면 한잔에 5만원씩 하더라도 사서 마실것이다.

하나에 몇백만원씩 하는 산삼을 왜 사서 먹는지 이해하는 사람은 생활하기에 적합한건지 부적합한건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그런 발언은 나름 최선을 다해 여러가지 유명한 커피를 로스팅도해보고 여러기구를 써서 드립도 해본뒤에 나올수 있는거라서 그 커피집사장님을 나는 꽤 인정하고 다른커피집보다 자주 간다. 블루마운틴은 커피의 깊고 슬픈맛을 이미지화한 명칭이라는걸 커피가 맛없을 100가지 조건을 극복하고 1초이상 맛본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오늘 오랜만에 커피를 드립했다. 에디오피아 중약배전 평범한 커피원두를 코만단테로 갈아 칼리타 종이여과지에 동드립기구를 사용하여 난로에 끓인물로 줄드립했다. 나는 모든 형식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않지만 커피 맛을 살리려다보니 할수없이 위와같은 형식적인 용어들이 사용되어진 것이다. 어디서 따로 배우지않아도 커피맛을 몇번쯤 느껴보고나선 도구와 방식이 갖춰지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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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여름에 너무 무더워서인지 마당에 백합이 한송이도 피지않았다. 백합의 센슈얼한 향기에 반해서 나는 백합을 꽃들의 여왕이라고 생각하게되었다. 그리고 올해는 그런 백합을 한번도 보지못해 갑자기 백합향이 그리워서 내일 백합향을 사러가기로 했다. 사실 살아있는 꽃의 향을 느낄수 있는 방법은 살아있는 꽃을 마당이든 화분에 기르거나 하는것이겠지만, 그래서 백합향에 취해있는 나로선 몇해전 마당에 백합을 사다심은거겠지만 올해처럼 무더운 여름에 나의 백합은 피지않았다. 꽃집에도 살아있는 백합을 파는곳은 한곳도 보지못해서 할수없이 조금더 자주 비슷한 향기라도 느껴보고싶어서 향수를 구하기로 한것이다. 향수는 천연향은 극히드물다하여 비교적 평범한 인조백합향을 구하기로했다. 블루마운틴 진품은 구하기어려워서 잘 볶은 에디오피아 커피로 대체하는것과 같다.


깊음. 아름다움. 열기. 이런것들은 어딘가 서로 닮아있는것 같다. 그것들에 근접하기 위하여 혹은 운이 좋다면 한번쯤 경험하고 느끼기 위하여 이런 글 같은걸 끄적여본다. 백합의 감미로운 향기, 커피의 깊은 바다속으로 침몰하는듯한 깊은맛, 무엇인가를 위한 열정 등등.


*글을 쓰고나서 백합화분을 열심히 검색해본결과 1시간안쪽 거리에서 백합화분 파는곳을 찾아내어 가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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