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미 여러번 반성을 하고 여러번 다짐을 하고 또 어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다짐을 해본다.
-야동사이트를 언팔하고 야동을 그만보겠다. 술마시면 땅기긴 하지만 중독성이 있어서 정신건강에 안좋은것 같다. 건전하게 5차원 여성으로 알려진 배우나 오드리햅번이나 안젤리나졸리 등의 사진으로 만족하겠다
-과속은 꼭 필요한 경우 이외엔 안하고 150미만으로만 다니겠다. 과속으로 인해 사고를 낸적은 30대초에 혼자 가드레일박고 공항에서 찌그러진차 반납한게 전부지만 한번에 과속딱지벌금을 70만원어치 낸사람도 잘 없을것이다. 생활비도 절약하고 교통법규도 지키고 좀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다니도록 하겠다
-법 얘기가 나와서 하는말인데 만약 내가 충동범죄 당사자로 고소고발을 당해 법원에 서게된다면, 가령 내가 미워하는 내란동조판사 지**같은자를 우연히 산에서 둘이 맞딱뜨려서 내가 분을 참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한대때린뒤 나무에 묶어놓고 왜 그렇게 내란범들을 도와주는건지 강제심문하게되었다 가정해보자. 지나가던 등산객한테 신고당하고 납치 및 폭행혐의로 기소되어 법정에 서게된다면, 변호사 고용은 안하고 모든과정을 혼자서 스스로 변호할 것이다.(난 비법조인으로 법을잘 모른다) 일단 운이좋으면 조사받을때 예쁜 여성수사관 얼굴을 본뒤에 얼마뒤 생길 공소청 검사님하고 직접 얘기하고싶다고 말해서 검사를 만난뒤 고성 등 큰목소리를 유도하여 큰목소리가 나오면 '무서워서 검사님한테 조사못받겠으니 공수처 변호사좀 불러주세요' 등. 그리고 공수처에서 검사나 변호사가오면 저 이전에 저 수사했던 예쁜여성수사관이외 다른사람이 조사하면 한마디도 안할거에요. 지난번 그 여자분 다시불러주세요 등등 수사관 검사 공수처검사(변호사) 판사 등을 두루만나보는거다. 그리고 내란동조세력을 때리고 나무에 묶어놓은게 난 상받는게 아니라 왜 벌받아야하는건지 난 정말 모르겠으니 알아서 소신껏 판결하라고 말할것같다. 그럼 아마 판사 납치및 폭행죄 등으로 징역 3년이나 5년쯤 나올까? 항고해서 대법원까지 가고 뉴스에 나의 잘생긴 얼굴이 나오겠지. 윙크한 사진 나오게해달라고 기자분들께 부탁하고 기자들앞에선 윙크하며 다니는거다.
(이건 다짐은 아니고 법얘기가 나와서 한번 상상해본거다)
다시씀
이어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며 세상과 특정집단을 싸잡아 욕하지않고 세상을 좀더 순수한 곳으로 바라보고 싶다. 지금처럼 맨날 지금사회는 현대가 아니라 2억년전 쥬라기나 20억년전 선캄브리아기같은 정글밀림의 세계와 같다고 말하는것이 아니라, 시선을 좀더 순수하게 바꿔서 문화와 문명이 발달하고 사람들이 성실하게 나름대로 열심히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회로 보겠다. 사실 세상이 부조리의 온상으로 보이는건 내 안의 욕망과 폭력성과 이기심 각종 부조리등이 있어서 그런면이 있다. 나치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이었던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당했던대로 다시 학살자집단으로 변한것은 근원적으로보면 적절히 치료받지못했던 그들의 집단상처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가진 본래 성품자체는 착하고 순진한것이라 보겠다.
이건 다짐인데 만약 내가 제주43이나 이스라엘의 학살과같은 학살의 피해자가될 처지에 있다면? 그땐 대응은 하겠지만 할수없이 죽어야할 순간이라면 '나에게 총을 쏘는 너희들도 본래는 착한사람들이다. 너 자신을 알라'고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죽는거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히말라야트레킹을 어느날 다시 가게되면 사탕을 여러봉지 들고가고싶다. 20대때 트레킹하는데 '캔디있나요?(do you have candies?)' 묻던 눈이 초롱초롱 빛나서 깨물어주고 싶을정도로 귀여운 아이들에게 사탕을 못준게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탕을 들고가서 아이들을 만나면 주고싶다. 그리고 혹 다시마주칠그때도 사탕이 없다면 나중에 장날에 사탕하고 바꿔먹으라고 가지고있는 물건중 값이나갈만한것 가령 지갑이라던가 시계라던가 아니면 입고있는 등산용 바람막이파카라도 벗어주고 올것이다.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는 가능한한 줄이고 대신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바라볼줄 알도록 노력하겠다. 나는 사실 이미 학생때부터 인정받을만큼 받았다. 중학생때까지 나는 일주일에 한번 아침조회를 할때 수상식이 있는날이면 거의 늘 조회대앞에 상받는 대표로 나가있던 학생이었다. 주분야는 과학과 글짓기로 학교대표로 시나 전국구대회에 출전할 정도여서 동양고전을 읽고 아노미가 시작된 이후조차도 난 인정받는 학생이었다. 받았던 상을 졸업전에 엄마의 반대로 몇개빼고 다 태우기전까지, 그리고 고딩때 강남의 모교에서조차 조회대에서 상받을때까지. 대학에서 전공시험때 백지를 냈지만 천재교수님밑의 연구원으로 대학원에 들어간 학생 등 나는 초년시절에 너무 과도한 인정을 받았다. 과거얘기고 콩과 쑥이 서로경쟁하는데서 아주약간더 나았던 병아리키재기 시절의 일들이지만 아무튼 나는 일생에 필요한 타인의 인정량을 이미 초과한지 오래되었는데 한번씩 이런사실을 잊고 타인의 인정을 받으려는 심리가 내안에서 확인될때가 있다. 나이가 몇인데 조선시대같으면 애를 18명쯤 낳았을나이인데 부끄러운줄 알고 반딧불을 만났을때 랜턴을 끄고 작지만 그보다 아름답게 빛나기 어려운 영롱한 개똥벌레의 푸른초록 빛을 감상하듯, 나의 자만과 오만과 넘치는 모든것들을 놓아버리고 만나는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상대를 바라보고 싶다.
빨래가 다되어 이만 적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