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캐는 공무원.
부캐는 읽고 쓰는 작가.
명함에는 ‘OO교육청 OO팀장’이라고 적혀 있지만, 퇴근 후 노트북을 열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댓글을 확인한다. 그 시간만큼은 직급도, 업무도, 상사도 없다. 오로지 나만 있다.
오랫동안 본업에 충실하며 살아왔다. 공무원이 마치 천직인 것처럼 여겼다. 왜 공무원이 되었을까. 돌이켜보면 할 수 있는 것도, 경험도 많지 않았던 나에게 가장 공평해 보이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5지선다 안에서 문제를 풀고, 성적 순위로 취업 여부가 갈리는 세계. 그때의 나에게는 그 선택이 가장 안전하고 합리적으로 보였다.
공무원으로 일하며 나름의 자부심도 있었다. 어디서든 직업을 말하는 게 부끄럽지 않았고, 한 나라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뿌듯함도 느꼈다. 8년 차쯤 되었을 때, 내가 맡은 업무로 새로운 학교가 지어지는 걸 보며 가슴이 벅찼다. ‘아,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닿고 있구나.’ 무엇보다 자라나는 학생들을 위한 일이라는 점이 더 기뻤다.
그런데 15년 넘게 공무원으로 살다 보니, 반복되는 패턴과 조직의 리듬이 조금씩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본업에서 한 발짝 물러나 두리번거리던 중 책을 만났고, 읽고 쓰는 일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현실과는 다른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부캐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조금씩 다져갔다.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아보니 본캐와 부캐 사이의 간극이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다. 회사에서 이룬 성과보다 블로그에 달린 댓글 하나에 더 가슴이 설렜고, 회사에서 받은 장관상보다 전자책을 쓰고 유페이퍼 메인 화면에 내 책이 올랐을 때 더 기뻤다. 내게 진짜 기쁨을 주는 일은 누가 시켜서 하는 회사 일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 시작한 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부캐는 본캐를 지켜주는 역할을 했다. 조직과 관계에 과도하게 매몰되지 않게 해 주었고, 직함이 아닌 나 자신으로 설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부캐에 대한 갈망은 커졌고, 본캐의 의미는 조금씩 옅어졌다. 둘 사이의 균형을 잡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지금도 그 경계 어딘가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는 게 사실이다.
2026년, 새로운 팀으로 옮기며 매일 정신없이 분주하게 지내고 있다. 본업에 충실하는 일이 재미있다가도, 읽고 쓰는 시간이 줄어들 때마다 마음이 불안해진다. 하지 못하는 일들이 쌓일수록 마음은 더 버거워진다. 어떻게든 균형을 유지하고 싶어 마음을 졸이며 애를 쓴다.
오래라이터스에서 운영하는 브런치 챌린지 연재 날이었다. 새로운 브런치북 연재를 구상했지만 도저히 글을 쓸 여력이 없었다. 하루 종일 업무에 매달린 뒤 집에 돌아와서는 차분히 앉아 글을 쓸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챌린지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 글을 올리는 날, 나만 빠지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예전에 써두었던 글을 끌어와 겨우 한 편을 완성해 올렸다.
꾸역꾸역 글을 마무리하긴 했지만, 아직 업무 적응이 안 된 상태에서 두 가지를 병행하는 건 버거웠다. 이러다 본업에 구멍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자, 일주일쯤 글을 못 쓰더라도 일단 업무 파악이 먼저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빨리 적응해야 다시 글을 쓸 여유도 생길 테니까.
이 일을 계기로 분명해진 사실이 하나 있다. 본업이 흔들리면 부캐도 오래갈 수 없다는 것. 완벽한 답은 없다. 어쩌면 본캐와 부캐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균형을 유지하며 질문을 놓지 않는 일이다.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
어디까지 확장하고 싶은지,
그리고 지금의 나는 어떤 균형 위에 서 있는지.
인생은 원래 갈등과 고민, 흔들림 속에서 조금씩 방향을 선명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아직 헤매고 있다면,
그건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어느 방향으로든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