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은 남편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차 키를 집어 들었다.
“지금 전주에 내려가야 할 것 같아.”
“이 밤에? 무슨 일인데?”
“아빠가 자전거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다 넘어지셨대. 지금 경찰서에 계시대.”
치매를 앓고 계신 시아버님은 예전에 살던 집을 찾아가신다며 자전거를 타고 전주에서 진안 시골까지 가셨다고 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길을 잃었고, 고속도로에 들어섰다가 넘어지셨다. 누군가 신고를 해 경찰을 통해 연락이 온 것이다.
남편은 6남매 중 다섯째이자 장남이다. 위로 누나가 네 분 있고, 이제 막 마흔을 넘겼다. 시아버님은 여든셋이다. 몇 년 전부터 치매 증상이 시작됐고, 시어머니는 아픈 남편을 돌보며 우울증을 앓고 계신다. 남편은 장남이라는 이름 아래 두 분을 동시에 책임지고 있다.
나 역시 비슷한 시간을 살고 있다.
내 나이 서른셋에 엄마가 간암 판정을 받았다. 만 8년이 지난 지금도 투병은 계속되고 있다. 아이가 어릴 때가 가장 힘들었다. 직장에 다니며 아이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벅찼는데, 양가 어디에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시부모님은 노쇠하셨고, 친정 엄마는 아프셨다.
주변을 보면 부모님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은 드물었다. 친구들은 부모가 아이를 봐주고, 반찬을 해다 주고, 힘들 때면 “엄마” 하고 기댔다. 그 풍경을 볼 때마다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내 상황이 애석했다.
‘왜 나는?’
왜 나는 투정도 부리지 못하고
왜 나는 늘 부모 걱정부터 해야 하고
왜 나는 이렇게 혼자 버텨야 할까.
사람이 이기적이라 가끔은 나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엄마의 병이 조금만 더 늦게 왔더라면 어땠을까. 아이를 다 키운 뒤였다면 마음에 여유가 있지 않았을까.’
그 질문들을 오래 안고 지낸 끝에 다른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다.
치열한 삼십 대를 거쳐 사십을 넘어서자 부모가 아픈 친구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그제야 알았다. 누구의 부모나 늙고 병드는 시기가 온다는 걸. 이건 누구에게나 오는 인생의 구간이었다. 다만 시점이 다를 뿐이었고, 우리 부부는 그 시간을 남들보다 조금 일찍 맞이했다. 그만큼 우리는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어른이 되었다.
친구들이 여전히 부모에게 기대고 있을 때, 나는 내 삶을 책임지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왜 나만’이라는 억울함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를 다른 감정이 채워졌다. 감사함.
나폴레옹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내 삶의 모든 역경에 감사한다.
그 덕분에 관용, 연민, 자제력, 인내를 배웠기 때문이다.”
정말 그랬다. 삶이 순탄하기만 했다면 나는 아직도 철없는 어른으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픈 엄마를 보며 연민을 배웠고, 치매를 앓는 시아버님을 보며 인내를 배웠고, 우울증에 빠진 시어머니를 보며 관용을 배웠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한 시간 속에서 자제력을 배웠다.
이 덕목들은 책으로는 배울 수 없었다.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인생에서 역경은 피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온다. 다만 언제 오느냐가 다를 뿐이다.
10년 일찍 온 부모님의 노쇠함.
그 시간 덕분에
누군가에게 기대는 어른이 아니라
누군가를 책임지는 어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