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스타벅스에 가서 깨달은 사실 하나

by 언어프로듀서


저녁 8시 5분.
남편이 조금 늦은 퇴근을 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가방을 내려놓지도 않은 채 다급하게 말했다.

"스타벅스 가자."

"아니, 왜? 조금 있으면 문 닫을 시간인데."

"1시간만 있어도 돼. 오늘 저녁은 공간을 좀 바꿔보자. 커피숍에서 각자 할 일 하면 되잖아."


솔직히 이해가 안 됐다. 이 늦은 밤에 스타벅스라니. 굳이 나가서 커피를 마실 필요가 있을까.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인데 왜 돈을 써가며 나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게다가 나는 스타벅스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 집 반경 500m 안에만 세 개나 있지만, 늘 사람 많고 시끄럽다. 내가 느낀 현실 스타벅스는 노트북 켜고 감각적으로 글을 쓰는 상상과 달리, 대게 도떼기시장에 가까웠다.


그런데 아빠 말을 듣고 있던 딸아이의 반응이 달랐다. 이미 신이 나서 몸이 들썩들썩했다. 평소 외출할 때면 "엄마, 5분만!" 하며 한참을 기다리게 하던 아이가 그날은 먼저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신고 있었다. 밤바람을 쐴 생각에 얼굴이 환해 보였다.


아이가 좋아하니,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섰다.

사실 나 역시 마음 한켠에서는 나가고 싶었다. 다만 그 마음을 늘 ‘굳이 돈을 써가며?’라는 생각으로 눌러왔을 뿐이다.


다행히 그날 스타벅스는 조용했다. 늦은 시간이라 사람이 거의 없었다. 평소라면 자리 하나 찾기 힘들었을 텐데, 넓은 테이블에 세 식구가 차지했다. 남편은 노트북을 꺼내 밀린 업무를 시작했고, 아이는 문제집을 펼쳤다. 나는 블로그 글을 썼다. 세 식구가 한 테이블에 앉아, 각자 자신만의 영역에 집중했다.



이상했다. 분명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인데, 여기서는 집중이 훨씬 잘됐다. 아이도 평소 같으면 "엄마, 이거 모르겠어" 하며 5분마다 불렀을 텐데, 혼자 묵묵히 문제를 풀고 있었다. 집에 있었으면 숙제를 대충 끝내고 유튜브 보겠다고 졸라댔을 텐데 말이다.





왜일까.

공간만 바뀌었을 뿐인데.


집에서는 모든 게 너무 익숙하다.

소파와 TV, 테이블, 침대. 거실에 앉으면 리모컨에 먼저 손이 가고, 방에 들어가면 침대에 눕고 싶어진다. 집은 원래 그런 공간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편안함을 부른다.

반면 카페는 달랐다. 자연스럽게 해야 할 일로 시선이 향했다. 주변 사람 역시 노트북을 두드리거나 책을 읽고 있었다. 그 분위기가 우리에게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공간이 태도를 만들고, 태도가 집중을 만들었다.


창밖을 보니 어느새 9시가 넘었다.

아이가 문제집 한 단원을 다 풀었다며 환하게 웃었고 남편도 업무 보고서를 마무리했다. 나 역시 다음 날 아침 발행할 글 한 편을 완성했다.


단 한 시간.

문 닫기 전 마지막 한 시간이었는데,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걸 해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엄마, 오늘 재밌었어. 우리 또 가자."


그 순간, 내가 그동안 아끼고 있던 건 돈이 아니라, 익숙함에서 벗어날 의지였다는 걸 알아차렸다.


익숙했던 저녁 시간을 살짝 비틀었을 뿐인데 하루 마무리까지 잘 채운 뿌듯한 날이 되었다.



그날 내가 한 건 대단한 결심이 아니었다.

그저 현관문을 열고 자리를 옮긴 것뿐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한다.

“어차피 똑같아.”


정말 그럴까.


생각을 바꾸기 어렵다면

공간부터 바꿔보는 것.


의외로 많은 것들이 그다음에 따라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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