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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담화에 상처받은 날, 언니는 ‘지금 뛰어’라고 말했다

by 언어프로듀서


새벽 블로그 글을 발행하자마자 문자가 왔다.

“잠을 못 자서 어떻게 해?”

발행 0.1초 만에 걱정을 건네는 친한 언니의 문자에 피곤한데도 웃음이 났다.



사실 요 며칠 회사에서 선배와의 마찰로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회사 내부 문제로 팀장들과 협의하던 자리였다. 한 선배와 의견이 맞지 않아 내 생각을 분명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나를 향해 “팀장님은 그게 문제야. 그거 고쳐야 해.”라고 말했다. 그 말이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에 꽂혔다. 그 이후에도 선배는 그 자리에 없었던 다른 직원을 찾아다니며 당시 상황을 자기 유리한 쪽으로 설명하고 나를 욕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는 내가 아니라 그 선배한테 있는 거 같아 억울한 감정이 솟구쳤다.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졌고 이불속에서 뒤척이며 그 말을 곱씹었다. 차라리 책을 읽고 글을 쓰자는 마음으로 새벽마다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날 올린 블로그 글도 두 시간밖에 못 자고 쓴 글이었다. 며칠간 나를 짓누르던 감정과 피로가 글 곳곳에 스며들었다.


글을 읽은 언니에게 괜히 투덜거렸다. ​


“직장 그만두고 싶어. 돈 벌어야 하니 그만두지도 못해. 사람도. 회사도.. 다 싫어.“

“왜 그렇게 된 건데?“

“회의에서 내 의견 말했다가 뒷담화 대상이 됐어..”

"지금 당장 나가서 30분만 뛰어. 숨이 턱끝까지 막힐 때까지 뛰어."

마음이 힘들다는 동생에게 갑자기 뛰라니. 너무 뜬금없었다. 학창 시절 달리기 꼴찌는 항상 내 차지였다. 운동회가 열리면 손목에는 늘 ‘6’이라는 도장이 찍히던 아이였다. 느리기만 한 게 아니라 지구력도 약했다. 운동장 두세 바퀴만 돌아도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배가 꼬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오래 달리기는 더욱 싫었다. 그런 내게 새벽 달리기를 하라니. 말이 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창밖을 보니 어느새 동이 트고 있었다. 몇 시간을 책상에 코를 박고 앉아 내 생각에 갇혀있느라 세상이 환해지는 것조차 몰랐던 것이다.


언니는 다시 말했다.

“네 안의 에너지를 바꿔봐.”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을 울렸다. 맞았다. 내 안에는 며칠째 부정적인 상념만 가득 차 있었다. 결국 언니의 부추김에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섰다. 현관문을 닫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누군가는 나를 비난하고 또 누군가는 이렇게 나를 밖으로 꺼내 살려준다. 그 선명한 대비가 무너진 마음을 다시 움직이게 했다.



첫 달리기는 뛰는 사람들이 다 쓴다던 ‘런데이’ 앱을 깔고 시작했다. 1분 뛰고 2분 걷기. 그렇게 30분. 고작 1분 뛰고 2분 걷는 데도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감각이 너무 좋았다. 처음 10분은 힘들었지만 그 고비를 지나자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직장도, 험담도 억울함도 모두 사라졌다. 그저 뛰는 다리의 감각, 땅을 딛는 소리, 바람결만 느껴졌다.

'아, 내가 살아 있구나.’

책상에 웅크리고 앉았던 나와 너무 달랐다. 몸이 움직이자 마음도 움직였다.

'이래서 사람들이 뛰는구나.

‘이래서 언니가 뛰라고 했구나.'


그제야 이해했다. 가만히 앉아 내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바뀌지 않는 에너지의 흐름이 있다는 걸. 생각만으로 마음을 다독이려 했던 나는 오히려 생각 속에 더 깊이 갇혀 있었다.





달리기를 마치고 떠오르는 해를 바라봤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온통 부정적 에너지로 가득했던 마음이 믿기 힘들 정도로 환해졌다.



우리는 종종 생각에 갇힌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걱정이 걱정을 키운다.


이번 달리기를 통해, 읽고 쓰며 머리만 굴린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때로는 몸속 에너지의 흐름을 바꾸는 움직임 속에서 더 빨리 문제가 해소된다.



가끔은, 생각을 멈추고 몸의 움직임에 나를 맡겨보면 어떨까.


머리가 만들어낸 편협한 생각 대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몸의 감각이 들려주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거다.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에너지에 마음을 열다 보면, 그동안 머릿속에서만 크게 부풀어 보이던 고민들이 사실은 그리 대단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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