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넘어섬 08화

빛이 있으라.

당신을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이는 반드시 존재한다.

by wordsfromulsan

인류는 자신이 나약하다는 걸 그 어떤 생명체보다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무한한 우주에서 우리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고민하는 것도 인류가 유일하다고 한다. 또한 신체적으로도 우린 다른 맹수를 손으로 이길 수 없다는 걸 꽤나 일찍 깨달았기 때문에 수많은 도구들을 발명하고 개발했다. 비록 그 도구들이 동족을 향하게 됐을지라도. 그래서 우린 무언가 믿을 존재가 필요했다. 이는 종교를 믿지 않는 이들도 역사가 증명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초기 문명의 인류도 자연재해 때문에, 식량 때문에, 죽음이라는 미지의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를 나약하다고 인지했고 그래서 "신"이라는 존재를 창조해 냈다. 현재는 사람마다 높아진 지식수준에 따라 의견이 분분할 것이고 과학이 발전에 따라 우주의 기원에 아주 조금씩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지만 과거의 인류는 이 모든 것을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신이 그랬듯이 우리도 신을 창조했다.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그 모습과 방식은 다를지라도 인류는 신을 믿었고 그 존재에게 구원을 바랐다. 이런 현상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그리고 나도 종교를 갖고 그를 향해 기도한다.

꽤 오랫동안 성당을 다니고 있다. 모태신앙은 아니지만 약 10년 전쯤 세례를 받고 마치 초기 문명의 인류와 달라진 바 없이 그에게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다. 첫 시작은 단순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년이 지나 엄마가 먼저 기댈 곳이 필요했고 그래서 지인들을 따라 성당에 가셨다. 물론 함께하는 지인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가족과 함께하고 싶으셨나 보다. 그래서 처음엔 동생을 데리고 갔지만 그는 금방 싫증 냈고 그래서 두 번째 타자로 나서게 된 것이 나였다. 처음엔 정말 엄마가 가자고 하니까 같이 갔다. 그렇게 마주한 첫 미사는 굉장히 엄숙하고 장엄했다. 그 분위기에 압도된 듯한 기억이 가물가물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무겁게 누르진 않았다. 마치 이렇게 거대하고 전능한 존재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니 너는 편안히 너만의 이야기를 하면 된다고 다독이는 듯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미사 속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말없이 내면의 나와 대화를 할 수 있었고 때로는 바라는 바를 그에게 기도하기도 했다. 그렇게 신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에게 참 이기적인 발상이지만 나는 그에게 기도하면 뭐든 이뤄진다고 생각했다. 마치 램프의 지니 같은 존재처럼 여겼던 것 같다. 나는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손만 비비면 뭐든 다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그를 향해 떠들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는 그 어떤 것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결과를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아니 내가 뭐 대단한 걸 바랐나? 일확천금을 내려달라고 했어? 아니면 죽은 아빠를 다시 데려와 달라고 했어? 관능적인 절세미인의 여자를 내 연인으로 만들어달라고 했나? 아닌데? 난 그저 내면의 평화를 바랐을 뿐인데 그것도 못 들어주나?"

이런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 뿌리내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에게 존재론적인 회의가 들었다. 정말 신은 존재하는 걸까. 내가 하는 기도를 들어주는 신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 걸까. 혹여 있을지도 모르는 외계인이 이 모습을 보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할 정도로 바보 같은 집단 착각은 아닐까. 그렇게 한동안은 신을 공격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런 자세로 나는 마음의 질병을 받아들였고 이 또한 신을 탓하게 되었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이런 아픔을 주냐고 울부짖었다. 그 뒤론 마치 그에게 보란 듯이 더욱 방탕하게 살았던 것 같다. 매일같이 밤만 되면 술에 취해있고,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이해하기보단 저주하고 비난했으며, 여자친구를 만들었던 이유가 그저 육체적 관계만을 위했던 경우도 종종 있었다. 정말 딱 그가 싫어할법한 행동만 골라서 하며 겉으론 착한 척하는 위선도 떨었다. 또 어느 순간부터는 미사를 안드리기도 했다. 그는 내가 세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분개했을까. 아니면 이런 나 조차도 불쌍한 양이라며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봤을까. 분노와 자비 중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줬을까.

그렇게 방황하고 반항하던 시기를 거치다 못해 끝내 그가 용서해 줄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을 자살 시도 사건을 거치고 난 뒤 다시 성전에 들어섰을 땐 순간 너무 부끄러웠다. 정말 창피했다. 사실 나는 그때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졌고 내 삶을 스스로 끝내지 못해 전혀 계획에 없던 여분의 삶을 더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한번 더 그에게 따지러 간 것이었다. 들어준 것도 하나 없으면서 왜 죽는 것도 내 맘대로 못하냐고, 대체 당신은 뭐가 문제냐고 대들러 갔다.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들어선 성전에서 마주한 십자가는 그대로 있었다. 아 물론 물리적으로 그것에 손댈 사람이 없기 때문에 모습이 그대로인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에서 풍겨와 나에게 닿는 그 영향력까지도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 거대한 십자가로부터 내가 받는 영향은 꽤 큰 것이었다.

성전 의자에 앉아 정말 오랜만에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깨달았다. 사실 신이란 존재는 내게 핑계나 변명 같은 것이었다. 내면의 평화를 어떻게 만들어낼지 고민도 하지 않았으면서 그를 탓하고 있었다. 매일 술에 취한 것을 포함한 방탕한 삶은 내 욕망이었고 그걸 신에게 반항한다는 것을 명분 삼아 그렇게 행동한 것이었다. 결국 모든 것이 내 탓이었는데 그걸 인정하기 싫어 신을 탓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해진 것이 아니라 빛이 비치는 곳이 있었음에도 내가 그쪽을 애써 쳐다보지 않은 것이다. 부끄러웠다.

성경을 기반으로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가장 처음 한 것 중 하나가 빛을 만든 것이라고 한다. "빛이 있으라.(Let there be light.)"라는 구절이 성경의 첫 시작에 나오기도 한다. 나는 당연히 그 빛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적인 빛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의미가 맞겠지만 나는 그 순간 창조된 건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내면의 빛도 함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에도 당신의 마음에도 환한 빛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것이니 우리의 조상들이 그랬듯 당신 마음의 빛을 찾고 그것을 믿으라.

이 글이 종교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이라면 당연히 불쾌하거나 동의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이유 또한 내가 대단한 간증을 하듯이 쓰고 있는 것 또한 아니다. 또한 독자들로 하여금 선교를 하고 성당으로 이끌기 위해 쓰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언급하진 않았지만 여전히 나는 신을 향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다만 여전히 어둠을 향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방식은 이 글과 전혀 달라도 된다. 마음이 약해져 어둠으로 가득한 잿빛 세상을 헤매는 이들이 어떠한 방법으로든 빛을 찾길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 지치고 힘든 당신을 사랑하는 누군가는 반드시 이 말을 전하고 있다.

"빛이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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