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하게 잘난 척하기. 두려움 없는 시동걸기.
내 취미 활동 중 하나는 운전이다.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날이 흐리면 흐린 대로 도로를 달리다 보면 날씨에 스며드는 기분도 들고 스트레스도 풀린다. 내 두 발로 달리는 것으로는 도달하지 못할 속도도 차와 함께라면 마음껏 달릴 수 있다. 비록 철 덩어리의 무생물일지라도 운전을 하는 동안엔 마치 내 친구 혹은 페이스메이커와 같은 기분이 들어 차에 친밀감이 들고는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래 탄 차를 팔 때는 아쉽고 섭섭한 기분이 든다고 하는가 보다.
뿐만 아니라 운전 중에 듣는 음악은 평소에 들을 때와 다르게 들리기도 한다. 운전을 한 뒤로 웬만해선 길을 걷지 않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음악은 대체로 집이나 글을 쓰는 카페에서 듣게 되었다. 그렇게 듣다 보니 항상 같은 배경에 같은 행동을 하며 음악을 듣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전보단 감흥이 덜해졌다. 하지만 운전을 하면서 음악을 들을 땐 기분이 다르다. 같은 길을 가도 평소와 다른 차들과 함께하고 그날의 날씨나 시간이 지나는 것도 내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다 보니 귀에 들리는 감상도 달라진다. 그렇게 이전엔 별로였던 음악이 운전 중 감상으로 인해 좋게 들린 적도 꽤나 많다. 음악을 좋아하는 내 입장에선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고 운전을 자꾸 하고 싶게 된 계기가 되었다.
현재 나는 누군가 내게 운전을 잘하냐고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대답한다. 실제로 이제껏 꽤 긴 거리를 운전했고 불필요한 일까지도 여러 번 겪었다 보니 어지간한 상황은 대응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 있다고 말을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건 사실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나의 내면엔 아직 혼자만의 망설임이 남아있다. 정말 잘한다고 해도 될까? 잘한다는 건 어떤 기준일까? 사실 한참 모자라는데 오만한 생각에 잘한다고 떠들고 있는 건 아닐까?
이전 글(잿빛과 색채 그 사이)에서도 썼다시피 남들도 하지 않는 비교를 또 내가 나에게 스스로 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떨칠 수 없는 나쁜 습관이다. 아마 첫 운전의 두려움이 남아있는 듯하다. 나는 자전거도 성인이 되어서 겨우 익혔다. 그러다 보니 운전대를 잡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운전은 잘못하면 타인의 큰 재산을 해할 수 있는 일이었고 나아가 생명을 앗을 수 있는 아주 위험한 행동인 것이었다. 그래서 뚜벅이로 걸어 다녔고 그에 따른 이점을 즐기기도 했다. 운동도 되고 느림의 미학을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친구는 과거 내게 언젠간 반드시 운전을 해야 할 일이 생길 테니 미리 준비해 두라고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 그런 일이 생기더라.
직장을 옮기는 과정에서 집에서 꽤 먼 곳에 출근하게 됐을 때가 있었다. 그래봐야 부산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거였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하철로 한 시간 거리였으니 멀긴 했다. 심지어 출근 시간에 사람들이 몰리기도 해서 그들 사이에 끼어서 가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아마 그때 처음으로 운전의 필요성을 느꼈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내가 하도 본가를 멀리하다 보니 엄마가 '얘가 오는 게 힘들어서 집을 안 오나? 차가 한 대 있으면 좀 더 자주 오려나?'하고 생각한 시기와 저 시기가 맞물리긴 한다. 불효자였다.
그렇게 자금을 이래저래 모아 중고차 한 대를 마련했다. 그리고 연수를 받았다. 참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떨릴 정도로 정말 긴장한 채 핸들을 잡고 액셀을 밟았다. 다행히도 연수 선생님은 참 잘 만났다고 생각한다. 잘했을 땐 칭찬을, 못했을 땐 따끔한 경고를 해주시며 당근과 채찍을 적당히 활용해 주셨고 그렇게 운전이 익숙해질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다. 그렇게 일주일의 연수가 끝났고 나는 혼자서 차를 몰 줄은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도는 쉽사리 낮아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사고도 몇 번 냈다. 물론 천만다행으로 사람을 치진 않았다.
이로 인해 연수를 받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운전대를 잡으면 떨렸다. 역시 할 줄은 알지만 잘하지는 못한다고 얘기하며 나를 숨겼던 것이다. 그러다 한 인테리어 회사에 잠깐 취업하게 된 적이 있다. 회사에서 내게 맡길 일은 현장 감리였고 그러려면 나는 하루동안 많은 곳을 둘러봐야 했다. 하지만 이 일을 꼭 해보고 싶었던 나는 면접에서 덜컥 운전에 자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진실로 바꾸기 위해 정말 자신 있는 "척"했다. 비록 이 거짓말은 금세 들통나게 됐다. 트럭 운전까지 맡길 줄 누가 알았으랴. 하지만 나는 이 회사에서 버티겠다는 마음으로 무조건 자신 있다고 뻔뻔하게 굴었고 그렇게 나는 일명 운전병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일하는 내내 하루 종일 운전하게 됐고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긴장도가 낮아졌으며 이 과정이 내가 운전에 매력을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운전을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보단 오늘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를 더 신경 쓰게 되었다. 운전이 후순위로 넘어가며 많이 익숙해진 것이다.
앞서 나는 운전을 잘한다고 말은 하지만 그 말에 여전히 조심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을 돌이켜보며 다소 뻔뻔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런 태도가 모든 상황에 무조건 적용되는 치트키(Cheat Key)는 절대 아니겠지만 내게 자신감이 필요할 때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여전히 자신 있는 분야가 많지 않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뻔뻔하게 굴다 보면 정말 자신 있는 분야가 하나씩 늘어가지 않을까? 나이와 상관없이 앞으로도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순간들이 분명 계속해서 다가올 것이다. 그때마다 항상 난 못할 거라고 자신 없다고 망설일 순 없다. 심지어 나는 오늘도 시동을 건다. 그리고 아직도 혹여나 사고가 나면 어떡하나 걱정하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또 다른 나를 꺼낸다. 나는 운전을 잘한다고 뻔뻔하게 다독인다. 그렇게 자신감을 끌어올린다. 또 다른 일에 시동을 걸 때 자신 있게 나아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