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o you think about queer culture?
8월 15일 광복절엔 서울대공원에서 열린 "원 유니버스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헤드라이너로서 Charli XCX(이하 찰리)가 내한했던 공연이었다. 그녀는 전자음악과 하이퍼팝을 주로 하는 아티스트이며 2024년 발매한 정규 앨범 [brat]으로 지금까지 전 세계 최고 수준의 화제성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인물이다. 나 또한 그 앨범을 굉장히 인상 깊게 들었으며 공연 영상도 유튜브로 많이 접해 팬이 됐던 터라 기대 가득한 마음으로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녀는 내 기대를 정말 아득히 뛰어넘는 무대를 선보였다. 규모가 쾌 컸던 무대를 채우기 위해 다른 아티스트들은 밴드나 댄서팀을 불러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였고 찰리 본인도 그렇게 하면 더욱 가득 차 보일 것이라는 걸 절대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날 같은 무대에 섰던 누구보다 체구가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마이크 하나만 들고 올라왔다. 목소리, 춤과 애티튜드, 카리스마 세 가지로 무대를 장악한 그녀는 작은 거인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게 했다. 전율 가득했던 무대에 나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는 확신이 들었고 한동안의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어간 밤이었다. 그 외의 아티스트들(BIBI, Hypnosis Therapy, Effie 등)의 무대도 굉장히 인상 깊었기에 소위 "도파민이 폭발한다"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모든 게 완벽한 것은 없다고 다소 당황스러웠던 순간도 분명히 있었고 오늘은 그것에 대해 써보려 한다.
헤드라이너가 찰리였던 만큼 전자음악과 하이퍼팝을 하는 아티스트들이 많이 참여했고 해당 장르의 팬들도 몰렸다. 그리고 전자음악과 하이퍼팝은 동성애 문화와 떼 놓을 수 없다. 전자음악은 셀 수 없이 많은 하위 장르들을 생성하며 역사를 써 온 장르고 그 세부적인 갈래의 탄생에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 분들의 참여도가 꽤나 컸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 장르의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들 또한 그들을 배척하기보단 포용하고 손길을 내밀어주곤 한다. 하이퍼팝 또한 그러하다. 전자음악에서 파생된 사운드와 상상 속 팝의 초현실적인 해석을 융합해 만든 하이퍼팝 또한 탄생에 있어 동성애 문화, 트랜스젠더 문화가 굉장히 큰 영향을 끼쳤다고 알고 있다. 찰리는 전자음악과 하이퍼팝 장르의 거물이고 지금의 위상을 갖추는 동안 그들과 함께 성장했다. 그래서 동성애자들 혹은 트랜스젠더들에게 그녀는 사회에서 배척받는 자신들을 포용해 주는 아티스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은 이번 페스티벌에 많이 참여했다.
입장 후 물품보관소에 내 가방을 맡기기 위해 줄을 서있을 때였다. 내가 서 있는 줄은 물품보관소로 가는 방향과 관람석으로 가는 길이 다소 헷갈릴 수 있게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어리둥절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그리고 그때 내 눈에 들어온 한 사람이 있었다. 뒷모습이 먼저 보였는데 잘록한 허리에 체크무늬 테니스 치마, 망사 스타킹에 굽 높은 신발, 웨이브가 들어간 긴 머리 등 영락없는 여성분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내가 서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는데 그때 보인 얼굴은 너무 남성적이었고 그 모습은 내게 너무 부자연스러웠다. 싫다기 보단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낀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다. 그러곤 꽤나 굵직한 목소리의 영어로 내게 이 줄이 무슨 줄이냐고 물었다. 답변을 하기 위해 입을 열긴 했지만 어버버 했다. 여성적인 외관에 아직 사라지지 않은 남성성. 그 양 쪽의 성별이 서로 조화를 이루기 위해선지 혹은 하나의 몸을 두고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그 모습은 내게 많이 당황스럽게 다가왔다. 그러고 나서 주변을 둘러봤더니 이 분과 비슷한 외형의 분들이 꽤나 많이 보였다. 물론 내가 그런 류의 모든 분들을 다 알아본 건 아니겠지만 실제 성별과는 다른 모습으로 무지개 깃발을 들고서는 자신들의 세상을 외관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이 경험은 내게 적잖이 충격을 주었다.
아 혹시나 오해할까 싶은 노파심에 한 가지 언급하자면 내가 그들을 혐오하거나 배척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나는 이번 페스티벌 전에도 누군가 내게 동성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거나 관련 기사를 볼 때면 분명하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 뭐 그리 문제가 되나?" 하고 생각했다. 즉 사랑을 느끼는 것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만의 에로스 화살이 어디로 향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나는 직접적으로 성별이 변했거나 변하고파 하는 외형을 처음 본 것이고 거기서 다소 당황했다는 의미다. 사실 거의 모든 동물의 미스터리 하면서 본능적인 움직임이나 반응은 대부분 생존 본능과 번식 욕구를 대입했을 때 그 의문점이 해결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기준에서 바라봤을 때 번식이 불가능한 방향을 향한 구애와 성생활은 종의 유지에 있어서 다소 불리한 처사이긴 하다. 게다가 인간은 그 어떤 종보다 가장 고등한 이성과 논리를 가진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본능에 남아있는 종의 유지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선 이성 간의 번식이 가장 논리적인 방향성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는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종에서도 발견되는 현상이라고 한다. 즉 생명의 기원이 어딘지는 몰라도 탄생 후 거친 진화 과정과 수많은 다양성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긴 역사 동안 꾸준히 존재해 왔고 이들에겐 이것이 본능일 텐데 과연 이걸 잘못됐다고 할 수 있을까. 난 절대 못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눈에 들어온 조화롭지 못한 외형은 그들에게 다가가기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리고 이런 내 반응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오히려 머리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 마음의 반응이 그들과 거리를 둔다는 게 이럴 수 있나 싶었다. 과하게 유교적이라 생각해 좋아하지 않는 표현이지만 우리 조상들이 음과 양의 조화를 강조했던 게 이런 이유 때문인 걸까라고 느꼈다. 사실 그들도 사람이고 내게 그 어떤 위협적인 태도를 취하지도 않았는데도 왜 당황스러움과 혼란을 느꼈는지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페스티벌이 끝나고 나선 설마 내가 그분에게 예의 바르지 못한 표정을 지은 건 아닌가 하는 고민도 들었다. 그저 다음번에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땐 조금은 더 자연스럽게 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음악의 유행을 들여다보면 메인스트림과는 별개로 유행하는 장르가 있다. 과거 내가 어렸을 땐 밴드 음악과 락이 유행했다. 그러다 카우치 사건으로 해당 장르는 국내에선 완전히 사장된 것처럼 되었고 그 자리를 힙합이 대체했다. 그러나 이 또한 각종 사건 및 쇼미더머니 쇠퇴 그리고 사장된 업계 안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밴드들의 노력으로 다시 한번 락은 부흥기를 맞았다. 그리고 감히 예상컨대 그다음 차례는 전자음악과 하이퍼팝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본다. 이 장르들이 유행하게 된다는 건 동성애, 트랜스젠더, 양성애 등의 퀴어 문화도 함께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사회적으로 많은 논의가 필요한 주제라고 생각하는데 본격적으로 떠오른다면 그땐 우린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14일 자 기사에 따르면 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수술을 받지 않았음에도 법적인 성별을 변경하고자 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기각되었던 게 2심에선 허가해줘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앞으로 국가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이런 상황은 점진적으로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이런 변화 속에서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