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다 어려운 가족이라니
나는 아직 가족과 친하지 못하다. 사실 어색하기로만 따지면 동네 카페 아르바이트보다 더 어색하다. 내가 스무 살 때 집으로부터 도망쳤던 그 선택이 내게 벌을 내리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도망갔던 내내 집을 멀리하고 싶었던 내 약아빠진 욕심이 죄책감으로 남은 게 아닐까. 두 번의 자살 시도와 한 번의 입원 치료 끝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여전히 가족들에게 다가가는 건 너무 어렵다.
엄마와 일상적인 대화를 하긴 한다. 다만 내 속에 있는 얘기를 꺼내는 건 너무 어렵다. 엄마는 가끔 내 건강이 걱정되어 요즘 기분은 어떠냐는 말이나 힘든 일은 없냐고 넌지시 물어보기도 하지만 나는 늘 피하고 있다. 사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덜컥 무섭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텐데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엄마가 만족스럽지 못할 만한 답변을 할까 봐 그런 것 같다. 내 공허함이나 우울함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또 걱정을 하고 그녀의 손으로 울타리를 쳐 가둘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엄마가 걱정하는 것도 이해되고 사고가 있었으니 혹여 또 나쁜 일이 생길까 봐 겁이 나는 것도 이해는 된다만 그래도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또 아직 안 해버렸해서 그런지 엄마와 내 내면의 이야기를 한다는 거 자체가 너무 오그라든다. 속된 말로 손발이 오글거려서 차마 하지 못하겠다. 많은 사람들이 결국 내 곁을 지켜주는 건 가족뿐이라고 하던데 나는 아직 이해가 안 된다. 심지어 한 때 적어도 친구들한테는 터놓고 얘기했던 내용들이 이젠 입 밖으로 내는 것조차 힘들어서 그런지 엄마한테는 더욱 안된다. 어쩌면 내가 속 얘기 자체를 안 하게 되어버린 걸까.
요즘 한국의 분위기는 꼭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장남이라는 위치가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나는 집에서 리더십이 있고 내 살 길 정도는 알아서 잘 찾아야 하며 아버지가 없는 이 집안에서 가장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어야만 했다. 누구도 나에게 직접적으로 이런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적은 없지만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특히 내가 아주 어렸을 땐 동생은 친구가 없었고 나는 그런 동생을 항상 데리고 다니며 '챙겨야' 했다. 내가 어딜 가든 동생은 함께해야 했고 내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도 동생을 챙기며 함께 놀아야 했다. 그러면서 엄마는 항상 내게 강조했다. 동생을 잘 챙기라고.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이 말은 내게 장남의 위치를 잊으면 안 된다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그걸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이게 나에겐 불필요한 죄책감으로 남은 듯하다. 나는 실패한 장남이라는 낯 뜨거운 사실이 아마 가족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동생과 멀어진 데는 아마 이 일화가 결정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갔지만 동생은 실업계 고등학교를 갔다. 그리고 그는 해당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 모든 실업계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 시절 그 학교는 소위 양아치들이 가는 학교였고 거기서 동생은 학교 폭력에 노출되었다. 귀찮은 존재라고 여겼던 동생이었지만 그 얘길 들으니 나도 피가 끓었다. 그래서 당시 알던 친구들과 동생들을 수소문했고 가해자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가해자들은 일진이라기 보단 그들과 같이 어울리고 싶은 일개 양아치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직접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고 그들은 금세 겁을 먹었다. 그러고는 가해자라는 녀석들이 학교에다가 다른 학교 형이 자신들을 협박한다고 일렀다. 이로 인해 학교에서도 정황을 알게 됐고 내부적인 조치가 이뤄졌다. 이 일은 동생에게도 나에게도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동생은 자신이 당하는 학교 폭력이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나 보다. 그래서 최대한 숨기고 싶었고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있었는데 내가 그걸 찾아내 버렸다. 사실 동생이 잘못한 건 하나도 없지만 자신의 피해를 치부처럼 여겼는데 내가 그걸 들춘 것이다. 그리고 일이 커져 학교에서도 알게 되었다. 동생도 남자였는데, 아마 자신이 약한 존재로 여겨지는 게 싫었던 게 아닐까. 동생은 이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 사실 나도 성급하긴 했다. 물론 형으로서 동생 몸에 생긴 멍들을 보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조금 더 조용하고 일을 키우지 않으며 처리할 수 있는 방법도 있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나는 화가 났고 그들을 다그쳤고 어떻게든 내 분노를 그들에게 보이고 싶었다. 이게 후회되진 않지만 동생을 대할 때 껄끄러운 벽이 생기게 된 사건인 건 확실한 듯하다. 그 뒤로 흔히 형제들은 원래 서로 대화를 잘 안 한다는 사실과는 다른 모양새의 관계가 된 듯하다.
사실 나도 이제는 가족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고 싶긴 하다. 그런데 이제는 방법을 모르겠다. 남들이 흔히 하는 말들은 입 밖으로 나올 생각이 없다.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면 평소에 안 그랬던 애가 갑자기 왜 이러냐는 말을 듣는 것도 무섭다. 나와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심리상담 선생님께선 인간관계도 근육의 섬유 조직과 같아서 하나하나 쌓일수록 더 단단하고 튼튼해진다고 한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건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이러다 정말 표현하지 못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는데. 나는 벌써 그걸 한 번 경험하기도 했는데. 부디 이 글을 읽는 이들은 나와는 다르길 바란다. 표현할 수 있을 때 더 표현하고 가까울 수 있을 때 더욱 친밀하게 지내길 바란다. 이 글을 읽을 여러분들이 가족들에게 표현하고 있고 너도 할 수 있다고 해준다면 나도 언젠간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