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넘어섬 04화

고해성사

보고 싶지 않은 그림자를 마주하다.

by wordsfromulsan

앞선 글들은 항상 긍정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무엇이든 잘 해낼 거라고, 이 글을 읽게 될 당신들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이렇게 해내야만 한다며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과연 이게 진심이었을까? 거짓말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온전한 진심만이 담겼냐고 물어보면 확신할 수 없다. 마치 운동화에 모래알이 낀 것처럼 찝찝함이 남았다. 나는 글에 진심을 담았지만 동시에 보고 싶은 것만 담았다. 아팠던 것도 이제는 빛나거나 빛날 수 있을 것만 담고 어두운 그림자에 숨어있는 것들은 애써 외면했다.

첫 글(감정의 배설)은 우울증과 부정적인 감정의 해소에 관한 것이었다. 감정의 배설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우울증이 왔다고 했다. 배설물이 가득 차 있는 건 남들도 그렇게 사니까 나도 이 정도는 참아야 하는 줄 알고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썼다. 거짓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애초에 배설물 자체가 덜 쌓이는 사람도 있고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이 쌓였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다. 그럼 그 배설물이 쌓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왜 그건 글에 담지 않았는가?

아마 내가 나약해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쯤 아버지께서 필라델피아 백혈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9번과 22번 염색체 사이에 전좌가 발생하여 걸리는 백혈병이라고 한다. 즉 아버지는 날 때부터 언젠가는 터질 시한폭탄을 안고 태어나신 것이다. 사실 처음엔 심각성이 와닿지 않아서 그런지 잠깐 힘들면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투병 생활은 내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다. 누군가는 이런 상황에서 기도도 하고 잘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믿음을 갖고 있어야 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렇지 못했고. 사실 아직 오지 않은 그의 부재와 그 뒤의 삶이 더욱 무서웠다. 심각했을지언정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아버지를 두고, 그가 사라지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걱정했다. 그리고 그는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내 걱정을 실현시켜 주셨다.

누군가 내게 물어보면 나는 항상 이렇게 얘기했다.

"아버지는 정말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무너진 걸 보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아버지는 성격이 됐건 신체가 됐건 강한 사람이 맞았고 그렇기 때문에 처음엔 이겨낼 줄 알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진짜 힘겨웠던 이유는 나는 그의 회복을 응원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었다. 그리고 비겁한 나는 그 얘길 입으로 내뱉으면 아버지가 힘든 상황에 응원은 못할 망정 당장 닥치지도 않은 절망적인 미래에 덜덜 떨고 있는 나약한 불효자의 마음을 들키는 것만 같아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 누구에게도.

장례식 때였다. 17살의 나는 상조업체에서 빌려준 상복을 입고 상주가 되어 수많은 조문객을 맞이했다. 다양한 인사말들을 듣게 됐는데 내 귀엔 하나도 닿지 않았다. 딱 한마디 빼고.

"이제 네가 이 집의 가장이야. 네가 이 집을 지켜야 해."

가장 듣기 싫은 이 말만 내 귀에 흉터로 남았다. 물론 이 말을 흘려들었어도 됐을 것이다. 이제 겨우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가정을 지킬 힘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 말은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는 말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게 과거의 내가 가장 두렵고 피하고 싶었던 미래였기 때문이다.

꿈도 없고 내 부족한 모습은 숨기고만 싶었던 내가 가정을 대표하고 지키라니. 감당하지 못할 만큼 너무 거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그때도 숨는 걸 택했다. 아니 숨는 것보다는 도망가는 걸 택했다. 분명 부모님 두 분이서 지던 무게를 어머니 혼자서 지게 되면 더 무겁고 힘들 것이라는 걸 알았기에 책임지는 것까지는 아니라도 덜어주는 것은 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그 일말의 무게도 지기 싫었나 보다. 내가 힘들 것 같으니, 내게 부담스러울 것 같으니 도망갔다. 그래서 누군가에겐 평안한 요람 같은 집이 내겐 벗어나고 싶은 감옥처럼 느껴졌다. 그때부터 나는 어머니를 외롭게 만들었다.

대학을 고려할 때도 일단 내 성적에서 갈 수 있는 곳 중 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을 먼저 찾았다. 당연히 부산과 대구 위주로 생각하면서 어디서 살 게 되건 여기보단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타지로 가게 된 이후로는 어머님께 연락하거나 본가에 가는 일을 점점 줄여갔다. 그게 내 현실을 잊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 덕분에 어머니께서 늙어가고 힘들어하고 있다는 건 외면할 수 있었다.

그뿐인가 어디. 그렇게 집에서 도망치긴 했지만 만족이 될 리 없었다. 계속해서 안 좋은 선택만을 하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기 때문에 내면의 외로움이나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걸 나는 술로 채웠다. 술자리가 생기면 다른 건 신경 쓰지 않고 무조건 나갔고 혹여 자리가 없으면 혼자 마시기 시작했다. 취해서 뻗어버리 듯 자는 게 모든 걸 잊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실제로 그 순간은 효과가 있었다. 웃기는 유튜브 영상이나 좋아하는 영화를 틀어놓고 술을 마시면 다른 걱정거리는 떠오르지 않았고 멍청하게 머리를 비운채 취해 잠들 수 있었다. 그래서 꽤 오랜 기간 이렇게 지냈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다음 날의 우울함과 공허함은 두 배, 세 배로 늘어서 찾아왔다.

이 모든 과정이 내 배설물을 쌓게 된 실질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이 사이에 언급하지 않은 더 세부적인 과정도 존재할 것이다. 밝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질투하고 거짓일 거라며 아니꼬운 눈으로 봤던 것, 가족보다 내 친구와 같은 사람들에게 더 신경 쓰며 지냈던 시절, 조금만 힘들어도 술과 담배로 지냈던 밤들 등 내 그림자 속엔 곪아 터진 고름 같은 내가 존재한다. 애써 모른 척하고 지내고 있지만 이들은 항상 내 발끝에라도 붙어서 나를 노려보고 있다. 이 그림자는 언제든 내가 방심하는 순간 잡아먹기 위해 침 흘리며 기다리고 있다. 이런 내가 쓰는 글마다 긍정적으로 끝내면서 나는 다 이겨낸 것처럼, 마치 이제는 다 깨달은 것처럼 얘기하는 게 나 스스로에게 와닿지 않았다. 한 번쯤은 내 그림자와 같은 어두운 모습을 토해내 듯 써 내려가고 싶었다. 사실 요즘도 이제는 똑바로 살아보자며 마치 예전의 나는 사라진 듯 지내고 있지만 정말 달라졌을까. 정말 그림자에 잠식되지 않은 햇빛 받는 밝은 부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게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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