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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 My Today Nov 16. 2019

내가 키우고 네가 벌어야 하는 데

동화 같은 남자 육아 휴직

내 꿈? 좋은 아빠가 되는 거.


연애 시절 서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남편의 한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나는 외국 어느 서점에 내가 쓴 책이 놓이는 꿈을 꾼다고 말했고,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늘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고 했다. 이 전까지는 나 스스로 나이를 갖고 기르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딸을 만나는 첫 번째 단추가 이때였던 것 같다.


임신인 걸 알면 영화에서 처럼 눈물이 나고 서로 꼭 껴안고 빙글빙글 돌겠지?라고 생각했었다 막연하게.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임신인 걸 안 날도 처음 병원에 가서 초음파로 아기를 확인한 날도 조금 떨리긴 했지만 빙글빙글 같은 건 없었다. 바로 입덧이 시작되었고 평소보다 더 자주 간식을 챙겨 먹고 출근길에 한 번, 퇴근길에 한 번 토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딱히 먹고 싶거나 먹기 싫은 음식이 없어서 식단도 전과 동일했다. 남들 다 한다는 태교도 몇 번 같이 동화책도 소리 내어 읽어보고 했는데 어쩐지 쑥스러워서 그만뒀다. 대신에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읽고 싶던 책들을 계속해서 읽었다. 엄마가 즐거워야 아기도 즐겁겠지. 어떤 상황에도 적용되는 마법 같은 말이 있으니까 얼마나 다행이람.


딸기 우유만큼 달콤하게


인생 최고 몸무게를 하루하루 갱신하며 예정일이 다가왔고, 지금 생각해도 부들부들 떨리는 출산을 거쳐서 드디어 우리 딸을 만났다. 16시간 동안 세상 처음 겪는 고통이 나를 집어삼킬 때 옆에 남편이 있었다. 눈물을 펑펑 흘리며 옆에서 내 손을 잡아주고 다리를 주무르고 등을 쓸어내렸다. 내가 아무것도 먹을 수 없으니 눈치 보느라 남편도 덩달아 굶게 됐다. 내가 편의점 가도 된다고 말해줬을 때는 한순간에 환해지던 표정이 지금도 선하다. 생수 한병이랑 딸기 우유를 사 온 남편은 딸기 우유를 분만실 냉장고에 넣었다. 이따가 마시면 좋을 거 같아서. 자정이 돼서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새벽에 병실로 옮겨진 후에 드디어 고통에서 해방된 기쁨을 딸기 우유로 누릴 수 있었다. 진짜 힘들어서 진짜 달콤했다.

 

육아의 세계에 내던져졌다


왜 우는지, 왜 안 먹는지, 너무 자는 건지, 너무 작은 건지. 육아 책이랑 맘 카페에 기대 봐도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너무 작고 여려서 혹시라도 어떻게 될까 봐 무서웠고 2-3시간마다 우유 주고 기저귀 갈고 정신이 없었다. 점점 정신은 몽롱하고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다들 백일의 기적이 올 거라고 응원해줬고 다행히 시간은 흘러서 백일이 왔다. 유 간격도 4-5시간으로 늘어나고 밤에 깨긴 해도 조금씩 통잠으로 옮아갔다. 그리고 다시 다들 말해주길 지금이 제일 좋을 때라고, 기기 시작하면 좋은 시절 다 갔다고 했다. 산 넘어 산이구나.


하루 종일 아기랑 씨름하기를 백일 째. 눈도 맞추고 고개도 가누고 엄마 아빠를 보고 방긋방긋 웃는 아가를 볼 때면 괜히 눈물이 나고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하루에 두세 시간 정도 쪽잠이 반복되고 빵 쪼가리나 바나나로 식사를 때우다 보면  눈물이 쭉 흘렀다. 게다가 긴 진통 덕분에 얻게 된 치질이 계속 낫지 않아서 앉을 때마다 긴장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예쁜 아이를 보면 피곤이 눈 녹듯 사라진다고들 하던데 전혀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다. 예쁜 건 예쁜 거고 피곤한 건 피곤한 거다. 어떻게 사랑하고 행복하다고 밥 안 먹어도 배부르고 잠 못 자도 초롱초롱한단 말인가. 


이렇게 순둥인데, 너네는 진짜 거저 키우는 거야


고맙게도 백일 무렵부터는 배고프거나 졸릴 때 말고는 울거나 보채는 일이 없어졌다. 양가 부모님 모두 아이가 너무 순하다며 입을 모아 칭찬했다. 동생 조차 조카와 비교해 아프지도 않고 때도 안 쓴다며 정말 쉽게 키우는 거라고 했다. 근데 진짜 힘든 거 맞는데. 남들보다 더 힘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나는 정말 힘들어. 

특히 힘든 시간은 새벽이다. 저녁에 씻기고 우유 먹어서 재우는 데 깊게 잠들면 다행이지만 얕은 잠만 자고 계속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 보통 새벽 3-4시까지 잠을 잘 수 없다. 아기를 안고 서서 자장가를 부르며 돌아다니기도 하고, 안고 짐볼을 두 시간씩 타기도 한다. 


그렇게 겨우 동틀 무렵에서야 온전히 재우는 데 성공한 날이었다. 아기를 침대에 누이고 혼자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있는데 남편이 침실에서 나왔다. 


왜 불도 안 켜고 앉아 있어?

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 나네.

왜?

열 달이나 힘들어서 죽을 고비 넘겨서 아기 낳았는데 바로 육아에 던져진 느낌이야. 

오늘도 낮잠 못 잤어?

낮잠이 문제가 아니야. 이렇게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나도 어제는 우유 먹이다가 기절할 거 같더라. 

아기 무럭무럭 자라고 점점 이뻐져서 너무 대견한데, 나는 점점 내가 아니어지는 거 같아. 

내가 애 보고 네가 회사 다니면 제일 좋았을 텐데. 


네가 이렇게 집에만 있을 애가 아닌데라고 말하며 남편이 내 헝클어진 머리를 넘겨주었다. 남편 회사는 육아 휴직을 쓰는 남자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여자들도 출산 3개월 후에는 대부분 복직하는 분위기다. 남편은 내 출산일 포함 이틀 쉬고 바로 출근했다. 만약 남편 회사가 남자 육아 휴직도 가능한 곳이었다면 내가 6개월 남편이 6개월 번갈아 쓰거나 나는 출산 휴가 후에 바로 복귀하고 남편이 육아 휴직으로 1년 쉬는 등의 옵션이 가능했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 회사의 경우 남자 육아 휴직 케이스를 종종 보곤 한다. 아직도 많은 남자 직원들은 육아 휴직을 쓰지는 않는다. 휴직이 가능하다고 해도 생활비의 압박이나 커리어 개발 상의 문제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부 모두에게 육아 휴직이 가능하면, 그만큼 선택의 옵션이 넓어지니까 육아가 훨씬 수월해진다. 


계속 맞벌이를 할 생각이니 때문에 육아 휴직 1년은 아이와 오롯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다. 그렇기 때문에 힘들어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신생아도 돌봐주는 육아 도우미 프로그램이 있기는 하지만 좋은 분을 만날지 아닐지는 복불복인 상황에 아이를 맡기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유아 학대 사건을 보면 이 세상 맞벌이 부모들은 얼마나 다들 가슴을 쓸어내리고 고민하게 될지 내 상황을 포함해서 안타깝다. 


출근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아기 사진이나 동영상 보내보라며 궁금해하는 남편은 진심으로 아이와 함께 있고 싶어 하고 육아 휴직을 쓸 수 있는 우리 회사를 부러워한다. 아기가 처음으로 경험하는 세상에 함께 하고 싶어 한다. 남편 주변 친구들도 아기는 정말 빨리 크고 지금의 한 순간 한 순간을 놓치지 말고 소중히 하라는 말을 해준다고 한다. 아침 일찍 나가서 야근에 회식에 치여서 퇴근하고 나면 아기는 잠들어 있고, 주말에는 지쳐서 소파에 쓰러지게 되는 일상 대신 남편에게도 육아 휴직이 필요하다. 처음으로 이유식을 맞본 아기의 눈빛, 혼자서 뒤집기 성공하고 웃는 얼굴, 속사포 랩 같은 옹알이가 터진 날. 하지만 다시는 오지 않을 아기의 처음을 함께하고 싶은 남편의 소망은 회사를 관두지 않는 한 이루어지기 힘들 것 같다.


일하고 성취하고 인정받는 사이클이 회사 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이제는 그런 사이클만으로는 커리어의 미래를 생각하기 어렵다는 걸 안다. 부모의 육아 휴직, 믿을 수 있는 보육 시설, 플렉시블 한 근무 시간 같은 것들이 보여주기 식 정책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내가 일하고 성취하고 인정받는데 필수적인 요소라는 걸 안다.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친구 두 명이 있다. 공교롭게도 한 명은 미국, 나머지 한 명은 네덜란드에 살고 있다. 아이를 먹이고 입히는 기본적인 것들은 외국이나 우리나라나 별 차이가 없어서 서로 육아 꿀팁을 나눌 수 있어서 도움이 된다. 두 친구 모두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휴직을 해서 나보다 복귀 시점이 이르다. 이게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친구들도 친구 남편도 재택근무가 자유롭기 때문이다. 친구가 일주일에 2~3일, 남편이 2~3일 재택근무를 번갈아서 하면서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일하고 사이드로 가사 도우미나 육아 도우미 서비스를 필요할 때 사용한다고 한다. 꼭 육아휴직이 아니라도 재택근무나 유연한 근무시간도 육아에 있어서 고려할 수 있는 옵션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부모님 세대에는 여자는 임신하면 회사 그만두고, 남자는 당일에만 병원에 가거나 그것도 퇴근하고 가는 분위기였다고 아버님이 지난번 식사 때 말씀해 주셨다. 지금 우리 세대는 직장마다 차이는 있지만 출산 휴가 3개월을 보장받고 정부에서 아동수당도 지원해 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회사 생활과 육아를 양립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 딸이 나중에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때에는 이런 어려움들이 해결되어 있을까.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을 주기 위해서는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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