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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Jul 10. 2018

끼어들 수 없는 그녀들의 사랑싸움

'여자들만 느낄 수 있는 다툼과 사랑의 참 맛'

<사진 출처 : 영화 '코파카바나' 스틸 컷>


부부 또는 엄마와 자식, 애인과 다툴 때 이성보다는 감정이 우선 할 때가 많다. 욱하는 마음에 결국 후회할 막말을 내뱉으면서 상대방 상처주기에 온 정신을 집중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직 어린 자식을 혼낼 때는, 욱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더라도, 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온 감정을 집중한다.  


감수성 예민한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은 좀 더 신경이 쓰인다. 대부분의 일을 알아서 잘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스스로도 그걸 아는지 평소 살갑던 아빠가 몇 마디만 퉁명스럽게 내뱉어도 서러운 눈물을 보인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아이들을 혼낸 후에는 꽤 오랫동안 마음이 좋지 않다. 물론 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잃어버렸던 웃음을 금세 되찾지만 아빠 입장에서는 '너무 과했나?', '이런 말은 하지 말 걸…'이라는 후회가 곁든 안타까운 마음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다.  


토요일에 딸아이 친구가 놀러 왔다. 초등학교 2학년 남동생과 셋이 잘 어울려서 노는가 싶더니 딸이 동생을 가차 없이 구박하기 시작했다. 엄마에게도 계속해서 짜증을 냈다. 머리가 커가기 시작하면서 자기주장도 강해지고 엄마와의 마찰도 잦아지는 게 눈에 보였다. 하지만 친구가 있어 적당히 넘어갔다.

 

그런데 다음 날 둘째와 블루투스 마이크로 노래를 부르는데, 숙제하던 딸아이가 갑자기 나타나 동생한테 자기 마이크라며 화를 냈다. 말리는 엄마에게도 짜증을 부렸다. 엄마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동생에게 과한 불쾌감을 보이는 모습, 순박하게 당하는 둘째에 대한 연민이 복합적으로 뒤섞여 '욱'해버렸다.


정신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아빠의 유치한 말들이 튀어나왔다. 


"엄마한테 버릇없게 뭐 하는 거야?"라며 "너는 아빠 컴퓨터 왜 써. 핸드폰도 내 거야 쓰지 마"라는 불필요한 말까지 새어 나왔다. 노트북으로 숙제하던 딸은 울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딸아이를 따라 들어가 정신을 가다듬으며 전 날의 일부터 차근차근 얘기했다.  


친구 앞에서 동생을 무시하고, 엄마한테도 자꾸 짜증 내면 친구가 동생을 우습게 볼 수 있고, 엄마도 존중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 편하다고 해도 가족끼리 존중해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엄마랑 동생이 정말로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 보라며 달랬다. "지금까지 잘해오고 있는 거 아빠도 다 알아. 동생을 좀 더 아끼고, 엄마에게도 조금 더 예의를 갖추면 좋겠어."라는 마무리.


나름 흥분을 최대한 가라 앉히고 침착하게 하고 싶은 말을 다 전한 거 같아 흐뭇했다. 울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딸아이 눈에서도 진심이 느껴졌다. 아빠의 깊은 뜻을 충분히 알아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조금 있다가 다시 아이 방에 갔다. 누워서 얼굴에 아이스 팩(?)을 하고 있었다. 잠시 뒤 일어나 숙제를 하러 컴퓨터 방으로 들어갔다. 여기까지는 무언가 정리되는 느낌.


그 모습이 안쓰러워 과제를 다 하면 '따듯한 말을 한마디 더 해줘야지'라는 생각에 딸 방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렸다. 그런데 얼마 뒤 엄마와 대화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도 아빠한테 혼난 딸이 안쓰러워 왔을 터. 그런데 둘의 대화는 다시 작은 다툼으로 번졌다.


'아빠는 안중에도 없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귀를 쫑긋 세웠다. 대화 내용은 내일 학교 가야 되는데, 울어서 눈이 부을 거 같으니 얼음 마사지를 더 하겠다는 딸과 안 해도 안 붓는다는 엄마의 대립. 둘은 신경을 자극하는 소음으로 티격태격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언제 그랬냐는 듯 낄낄거리며 내가 있던 방을 지나 안방으로 사라졌다. '뭐지?'


묘한 공허함이 밀려듬과 동시에 순간 내가 간과한 한 가지가 떠올랐다. 엄마와 딸은 영원한 친구라는 사실. 엄마는 어른이자 존중해야 하는 존재지만 딸에게 엄마는 '엄마지만 엄마 아닌 친구 같은 엄마'였다. 한순간 토라졌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깔깔거리며 웃는 친구 같은 모녀 사이.  


한 박자 늦게 알아챘다. 딸내미의 서러운 눈물 속에는 '아빠가 아무리 그래도 난 엄마랑 평생 친구처럼 지낼 거야'라는 의미가 숨어 있었다는 걸. 엄마와 누나, 아내와 장모님. 함께 나이 들어가며 더욱 살가워지는 그녀들의 모습에 남자들은 평생 느낄 수 없는 아름다운 다툼과 사랑이 깃들어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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