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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Feb 12. 2019

아빠를 능가하는 동네 형의 촌철살인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에 격하게 동감!'


아들의 뾰족한 마음에 부드러움을 담아준 동네 형에게 감사한다.


남자는 경쟁심이 강하다. 초등학생 자녀와 운동이나 게임하던 아빠가 승부욕에 발동 걸려 아들을 이기겠다고 죽을힘을 다하기도 한다. 10살 아들 역시 승부욕이 남다르다. 보드게임을 비롯해 이런저런 게임 할 때, 운동할 때 심지어는 오목, 제기차기나 윷놀이를 할 때도 지면 난리가 난다. 져주면 왜 일부러 그러냐며 화를 낸다. 대략 난감. 특히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축구를 할  승부욕이 극에 달한다. 덕분에 화기애애하던 놀이 분위기를 망치는 건 늘 아들 몫. 매번 똑같은 잔소리가 이어진다.


"이기고 지는 게 중한 게 아니야. 함께 어울려서 즐기면 되는 거야. 재미있게 는데, 네가 화를 내면 다른 사람 기분 상하잖아."


물론 이렇게 양반처럼 이야기할 때도 가끔 있다. 하지만 대부분 '다시는 아무것도 같이 안 해!'라든지' 자꾸 이렇게 하면 친구들이 싫어해. 아무도 너하고 안 놀'라는 미운 말을 하기 일쑤다. 그래도 자식 교육을 위해 양반 행세를 하려고 더 노력한다. 감정 조 가르 것도 부모 역할이니까. 하지만 반복되는 엄마의 무서운, 아빠의 양반 같은 잔소리에도 아들의 패배에 대한 분노는 잦아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려나. 걱정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함께 게임을 하다 짜증 내는 누나에게 아빠가 하던 양반 같은 잔소리 던졌다. 


"게임은 다 같이 하는 건데, 진다고 하기 싫다고 하면 다른 사 기분도 나쁘잖아. 즐겁게 하면 되는 거지." 


갑자기 철든 아들이 놀랍기도 기특해 물었다. "그런 말은 누가 해줬어? 다 컸네! 우리 아들." 당연히 '아빠가 해줬잖아요'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돌아온 말은 "손승연 형이요."


  

알고 보니 그 형은 아들이 축구 선수 손흥민 다음으로 좋아하는 축구 잘하는 동네 형이었다. 축구 선수가 꿈이라고 외치는 아들은 오후 5시면 아파트 축구장으로 달려간다. 자연스럽게 동네 형들이랑 어울려 축구를 했고, 자신을 리오넬 메시라고 부르는 형에게 푹 빠졌던 거다. 축구하던 중 8 : 2로 지던 상대팀 친구가 짜증 내며 안 한다니까 손승연 형이 친구에게 내어준 충고라고 한다. 아들이 보기에 아빠의 잔소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멋진 촌철살인이었던 거다. 형 덕분에 아들은 축구 경기를 비롯해 다른 게임에서 져도 더이상 화내지 않는다. 참으려는 모습이 보인다. 기특하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주말에 아들과 축구장에 나갔다가 그 형을 만났다. 좋은 기운을 풀풀 풍기는 형과 함께 어울려 축구하는 아들을 보니 흐뭇했다. 축구 실력과 리더십, 인성까지 두루 갖춘 멋진 5학년 형이었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고 한다. 얼굴도 모르는 손승연 학생 부모님 모습을 상상하며, '아들 참 잘 키우셨다'라는 혼잣말을 했다. 더불어 '내가 그동안 아빠 내공이 좀 부족했구나'라는 반성도 더했다. 축구 좋아하는 아들 덕분에, 아빠보다 스승 같은 형을 만났고, 그 덕분에 부자(父子)가 깨달음을 얻었다.


무엇보다 흐뭇했던 건 너무 애쓰지 않아도 아이들은 부모 걱정을 능가하는 삶을 살아 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너무 초조해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곁에서 지켜보며 가끔 엄지손가락 한 번 올려주면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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