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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Dec 07. 2018

사람 마음 얻는 최고의 지혜

'조금 덜 내뱉고 조금 더 듣는 연습이 필요해'


선배나 상사의 술자리에서는 늘 말을 아낍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나이테처럼 켜켜이 연차가 쌓이다 보니, 술김에도 정신줄 놓지 않을 능력이 생긴 덕분이랄까요? 긴가민가한 말은 아예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데도 익숙합니다. 말이 많아지면 실수할 가능성이 커지니까요.


  그런데 온전히 내 편이라고 생각되는 후배나 동료와의 자리는 다릅니다.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의 빗장이 조금은 느슨해지기 때문이죠. 그 틈으로 술이 스며들기 시작하면 마음도 입도 활짝 열리곤 합니다. 서로 잘 알고, 처한 상황을 너무 많이 공유하고 있어서겠지요. 차마 가족에게도 말 못 할, 상사에게 무자비하게 깨진 굴욕적인 일도 숨길 수 없는 사이니까요.


  얼마 뒤 결혼하는 후배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 오랜만에 동료들과 술 한잔 기울이며 밀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축하해. 어떻게 만났어? 뭐 하는 사람이야? 몇 살이야?' 등 형식적인 인사치레가 끝나면 주제는 자연스럽게 회사 이야기로 전환됩니다. 한 회사에 다니지만 일하는 팀과 업무가 상이하기 때문에 언제나 각양각색 사담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긍정적인 내용보다는 부정적인 얘기, 즉 불평불만이 항상 주제의 큰 축을 이룹니다. 대놓고 '회사 너무 싫다. 최악이다'라는 얘기를 꺼내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듯 공감에 공감을 더하며 자연스러운 분위기 흐름에 편승하게 되죠.


  '대박이지? 최악이지? 팀장님 진짜 너무하지 않냐? 최 과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어이없다 진짜. 정말 회사 그만두고 싶다. 회사가 점점 왜 이럴까? 친구네 회사는 말이야…'기타 등등.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회사의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동료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부각해 뒷담화에 더욱 열 올리며 결속력을 다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직접 입으로 내뱉지 않더라도 적당한 추임새나 침묵으로 동조하고 난 후 왠지 찝찝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술자리에서건, 싸움에서건, 회사에서건 말을 아끼는 사람이 승리한다는 걸 알지만, 물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듯 분위기 파도를 제대로 타면 헤어 나오기 쉽지 않습니다. 문제는 모두와 헤어지고 홀로 남겨졌을 때 발생합니다. '그 말 괜히 했나? 내 말이 너무 심했나? 말을 너무 많이 했나?'라는 찝찝한 생각이 밀려들기 시작하면 또다시 여느 때와 똑같은 후회를 하며, '다음부터는 진짜 말 아껴야지'라는 서글픈 다짐을 반복합니다.


  불평불만이나 험으로 엮인 이들과 왠지 돈독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이는 신뢰가 바탕이 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약점으로 이어진 사이일 뿐입니다. 서로가 침묵으로 믿음을 강요하지만, 신의라는 건 자신의 행실이 신뢰받을 가치가 있을 때 상대에게도 적용되는 것임을 알기에 찝찝한 것이겠죠. 무서운 일은 영원히 닫혀 있을 것 같은 판도라의 상자가 언젠가 열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출처 : 영화 '내부자들' 스틸 컷>


  카피라이터 정철이 쓴 책 <한글자>에 "남을 잘 웃기는 사람 곁에 열이 모인다면 남의 말에 하하 잘 웃어주는 사람 곁엔 스물이 모인다."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입보다는 귀를 먼저 열라는 조언이겠죠. Big mouth나 Talkative형 직원은 회사에서 환영받지 못합니다. 말이 적으면 실수할 가능성이 작아지고, 신뢰를 얻을 가능성은 커집니다. 많이 듣는 연습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다국적 회사 화이자 회장이었던 제프 킨들러는 매일 아침 10개의 동전을 바지 주머니에 넣는다고 합니다. 한 명의 직원과 대화하고, 고민이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줬다는 생각이 들면 동전 하나를 다른 쪽 주머니로 옮겼습니다. 하루 동안 10개를 모두 옮기면 자신에게 100점을 줬다고 합니다. 듣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고, 곁에 스무 명이 모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본 방송이 끝나자마자 재방송이 이어지는 케이블 TV처럼 수시로 펼쳐지는 직장의 불평불만이나 뒷담화가 진심 어린 마음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아니 그럴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단지 가슴속에 고여서 넘치는 분노와 슬픔, 실망과 서운함을 표출할 방법을 제대로 찾지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장 마음은 한결같습니다. 그저 바꿀 수 없는 현실의 서러움을 토로하고 위로받고 싶을 뿐입니다. 저 또한 그러니까요. 어찌 보면 늘 저지르고 후회하는 직장의 마음에는 아직 순수한 여운이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과유불급. 언제나 수위 조절은 필요합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니까요. 후회가 과해 넘치지 않도록 불평불만을 현명하게 덜어낼 줄 안다면 직장생활이 조금은 덜 버거울 것입니다. 이청득심以聽得心, '귀 기울여 경청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라고 했습니다. 덜 내뱉는 대신 오늘부터 조금 더 듣는 연습을 시작하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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