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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Dec 14. 2018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우리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망각하지 마'


아흔이 넘은 것 같은 할아버지 한 분이 바쁘게 아몬드 나무를 심고 있더구먼요. 그래서 내가 "할아버지, 아몬드 나무를 심고 계시네요?"하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오냐, 나는 죽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거든." 나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저는 제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요."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언젠가 죽는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지 않을 거 같다', '언제 죽을지 몰라 걱정된다'는 양 갈래 길은 결국 죽음이라는 하나의 종착역에 다다르게 될 테니까요. 평소 죽음 따위는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 듯 살아가는 우리지만, 조금만 눈을 돌리면 죽음의 그림자는 지천으로 널려있습니다. 다만 아직 내 차례가 언제인지 모를 뿐…


  초등학교 3학년 때 고모가, 고등학교 3학년 때 할머니가, 군대에 있을 때 이모가 돌아가셨어요. 그땐 소설 <이방인>의 뫼르소가 '오늘 엄마가 죽었다'라며 무미건조한 감정을 표출했던 것처럼 슬픔보다는 분주하게 돌아가는 장례식장 모습이 전쟁터 같다고 생각하며 바라봤습니다.



  28살 여름, 사회에 첫발을 내딛던 해에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로 갑자기 떠나습니다.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평생치 눈물을 다 쏟아냈어요. 글로 배우던, 노래로 흥얼거리던 슬픔이 아닌 오감을 총동원한 지극히 현실적인 고통을 처음 실감한 거죠. 제가 떠올릴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은 여전히 28살 여름에 머물러 있습니다.


  최근에는 3년 넘게 모신 팀장님을 하늘나라로 보내드렸어요. 장례식장을 지키는 동안 순간순간 스쳐 가는 조각난 추억들이 방울방울 눈가에 맺혔습니다. 한 명의 아버지를 또다시 떠나보내는 기분. 25년 이상 회사에 몸과 마음을 바쳐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살았던 인생 선배였습니다. 허무하다는 말 외에 적당한 표현을 찾기 어려웠어요. 금방 잊힐 일이기에, 짙은 슬픔과 아련한 감정이 오래 지속되지 않으리란 걸 알기에, 과거 속 희미한 사람이 될 것임이 자명한 사실이기에 더더욱 무상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새벽까지 남아 조의금 봉투를 정리했어요. 그 위에 또렷이 새겨진 700명 넘는 사람들 이름을 바라보며 쌓아온 인맥에 대한 감사함보다 허탈한 감정이 더 앞섰습니다. 그다음 가족의 상실감, 직장인의 비애, 덧없는 인생이라는 감정이 따라붙었어요. 이 모든 것이 남 일 같지 않다는 생각에 참 서글펐습니다.


  우리는 데칼코마니처럼 천편일률적인 삶을 찍어내며 살고 있지만, 비극적인 결말은 저만치 밀어내고 남다른 해피엔딩을 기대하며 버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순간은 부지불식간에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운명에 따라 조용히 사회에서, 삶에서 배제되어야 하는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순간.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한 게 아닐까요.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g3735671/30175826727>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 모리(근육이 위축되고 마비되는 루게릭 병으로 죽음을 맞는다)는 "죽는 법을 배우면 사는 법도 배우게 된다."말을 전합니다. 또한 "죽으면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경구(警句)로 자신과 주변을 위로합니다. 밑바닥까지 타들어 간 양초처럼 서서히 꺼지는 자신의 생명에 대한 연민과 두려움보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으로 마지막 열정을 소진합니다. 운명에 순응하는 달관자 적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삶의 오묘한 비극성은 아무리 배려와 사랑을 바탕으로 이뤄진 인생이라 해도 죽음 앞에선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 현실아닐까요. 미래를 상실한 이후 찾아오는 깨달음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 깨달음은 제각각일 것이며, 허탈함의 크기는 본인 외에는 아무도 실감하지 못할 것입니다.


  죽음을 남일처럼 여기는 <그리스인 조르바> 속 노인, 어머니와 자신의 죽음조차 무미건조하게 받아들이는 <이방인>의 뫼르소, 죽는 법을 배우면 사는 법도 배우게 된다는 모리를 비롯해, 현실에서 죽음을 배운 제가 느끼는 사멸에 대한 감정은 모두 다릅니다.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오롯이 자신 몫이겠죠. 하지만 '죽으면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라는 모리의 말은 여전히 가슴속 깊이 남겨 두고 싶습니다.


  "나 죽으면 누구 좋으라고 보험을 드냐?"라는 농담을 던지며 웃던 아버지 모습과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하려고 해도 시한부 인생 선고받고 나니 그게 잘 안되네…"라고 나지막이 말씀하시던 팀장님 음성이 유난히 귓가에 맴도는 날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죽음과 관계, 소중한 오늘에 대해 하루하루 배워가고 있습니다. 


  타인의 안타까운 삶에 쉼 없이 연민을 느끼면서도, 내 죽음에 대해 떠올릴 겨를도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다 문득 생각합니다. '우리가 축복속에 삶을 부여받은 것처럼 떠나는 것 또한 그렇게 자연스럽게 부여받는 게 진정한 축복이 아닐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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