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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Dec 28. 2018

교묘하게 상대를 깎아내리는 사람

'누구나 악의적이지 않은 척 독설을 내뱉을 때가 있다'


직장인을 천직으로 알고 회사만 열심히 다녔는데, 늘 뭔가 채워지지 않는 듯한 정서적 허기에 시달렸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공허한 심경을 개인 블로그 운영으로 메우기 시작했어요. 틈나는 대로 끄적끄적 직장생활에 대한 상념들을 남기면서 10여 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상에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어요. 기업 블로그나 사보 원고 요청이 들어왔고, 강의를 해달라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고무적이었던 일은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를 받았을 때입니다. 막연하게 꿈꾸던 바람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으니까요. 그때의 흥분과 설렘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두근거림과 부담스러움이 혼재하는 그런 감정이랄까요. 내 이름 석 자 박힌 책이 세상에 나온다는 상상만으로도 가슴 벅찼지만, 첫 집필 작업이라는 부담과 사람들이 과연 내 글에 공감해줄까? 팔리기는 할까? 라는 걱정도 부록처럼 따라붙었습니다.


  본업에 소홀하다는 인상을 줄 것 같아 주변에는 거의 알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부담되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가까운 지인 몇 명에게만 의견과 조언을 구했어요. 대부분 좋은 기회라며 축하와 격려로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쿨함과 위로를 가장한 누군가의 쓰디쓴 한 마디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설레던 마음은 그대로 얼어붙었습니다.

 


 "직장생활 누구나 다 하는 건데… 그리고 네가 서울대 나온 것도 아니고 누가 보겠냐? 근데, 요즘에는 개나 소나 다 책 쓰는데 뭐 어때? 그냥 써봐."


  서울대와 책과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없지만, 강력한 독침이 벌렁이던 제 심장을 비집고 들어와 박혔습니다. 독이 퍼지듯 무기력한 기운에 전염됐고, 설레던 마음은 부지불식간에 분노로 변질되었습니다. 의욕 게이지도 급속도로 방전되기 시작했어요. 평소 위로나 대화에 서툰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텐데, 꽤 가까운 사람이었기에 서운함이 더욱더 컸습니다. '능력도 안 되는 게 책을 쓰려 한다'는 독설임을 모를 리 없었으니까요.


  모진 세상을 헤쳐나가다 보면 웃으면서 비꼬는 사람, 대놓고 독침을 날리는 사람, 실수인 양 남의 약점을 발설하는 사람, 앞에서 미소 짓고 뒤에서 딴소리 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예고 없이 만납니다. 그 때문에 다툼이나 싸움, 심지어는 살인까지 일어나는 세상이죠. 그렇지만 대다수는 분쟁의 씁쓸한 결말을 예측할 수 있기에 응수하지 않고 넘기려 합니다.


  물론 참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그런데 참는다는 의미에 대해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그들이 결코 나약해서, 생각이 없어서 미끼를 물지 않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누군가의 독설을 분노로 응수하지 않는 것은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간혹 질투심 비슷한 감정으로 친구나 동료에게 악의적이지 않은 척 독설을 내뱉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가 미끼를 물고 발버둥 치기 시작하면 '그런 의도 아니었는데?' 혹은 '별일도 아닌 거 가지고 왜 저래?'라며 상대를 더욱 무너뜨릴 작전을 짜 놓기도 하죠. 그런데 예상과 다른 상방의 무덤덤한 반응에 정신이 번쩍 들 때가 있습니다. 인격적으로 한 수 위라는 생각에 서겠죠. 아무도 모르게 의문의 일패를 당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잘하는 사람을 가만히 살펴보면 본인이 불행해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자라온 성장 배경이나 지금 처한 상황이 불행하니 나오는 말도 아프고 가시 돋쳐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 만나면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니 참 불쌍타' 생각하고 넘어가십시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나오는 혜민 스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척박한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일상을 반복합니다. 일방적으로 상처를 남기는 사람도 있지만, 쌍방과실인 경우에도 이를 망각한 채 자신만 상처받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상처투성이인 우리가 내상을 덜 입는 방법은 자신이 오묘한 마음으로 교묘하게 상대를 깎아내리지는 않는지 한 번쯤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역지사지의 교훈을 떠올리며, 실수하지 않는 방법을 모색할 테니까요. 그러면 상대방과 똑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 확률이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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