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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Jan 11. 2019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적인 심리

'사랑하는 내 가족이라면?'


가끔 술자리에서 선배들이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뭐 들리는 얘기 없어? 옛날에는 재미있는 얘기들 많았는데, 요즘은 나만 모르는 건지 너무 조용하단 말이야."


  '당신 가족이, 친구가, 애인이 조악한 소문 속 주인공이 돼도 태평하게 이런  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라고 되묻고 싶습니다. 저도 남 이야기를 듣고 전파하는 일에 결코 무결한 건 아니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가십거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찌라시 퍼 나르기에 일조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직접 당하기 전까지는.


  입사 5년 차 시절 얘기입니다. 직장동료와 퇴근 후 치맥을 하던 중 어이없는 이야기를 듣고 소중한 닭 다리를 놓칠 뻔한  있습니다. 동료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떠도는 제 소문에 대해 차근차근 들려줬습니다. 늘 흥미진진했던 불륜 소문이 남 일에서 내 일이 되니까 땅으로 쑤욱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어요.


  청춘 남녀가 단둘이 출장을 가도, 점심을 먹어도, 술을 마시기만 해도 다음 날 커플 탄생이라는 이슈가 등장할 만큼 말 많은 곳이 바로 회사입니다. 그런데 유부남에 애가 둘이나 딸린 제가 막장 소설 속 주인공이 될 거라고는 상상못했습니다.


  7살 어린 여주인공 신입사원과 점심을 딱 2번 먹었습니다. 그것도 여러 동료와 함께. 부문이 달라 자주 보지도 못했고, 업무적으로 엮인 적도 없었습니다. 오다가다 마주치면 서로 깍듯하게 인사하는 흔한 선후배 사이랄.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문은 꽤 구체적이었습니다. 여주인공은 이미 저랑 헤어졌고, 다른 팀 대리랑 사귄다고 했어요. 저도 모르는 사이 전 누군가의 전 남친이 되어 있었죠. 이뿐만 아니라 전 X팀, Y팀의 또 다른 누군가를 쉴새 없이 만나고 있더군요. 제가 수습할 수도 없고, 대놓고 확인할 수도 없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습니다. 저도 저지만 애 딸린 유부남한테 갖다 붙인 신입사원은 또 무슨 죄인지.


  억지스럽게라도 위안 삼은 건 소문의 주인공이 비단 저뿐만이 아니란 것이었어요. 재미있게도 제가 주인공이었던 픽션 속 유부남들 공통점이 있었어요. 아내가 임신한 남자라는 것. 아내가 임신하면 남편이 바 핀다는 허황한 공식에 요 충족된 몇몇을 대입한 누군가의 악의적인 소설이었겠죠. 하지만 근원지를 찾을 수도, 아니라고 회사 게시판에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고구마를 통째로 삼킨 듯한 심정으로 며칠을 보냈습니다.


  "나를 둘러싼 헛소문을 내가 그 안에 들어가서 정리하려고 하지 마세요. 헛소문은 2개월만 지나면 진실이 어느 정도 밝혀집니다. 내가 정리하려고 하면 오히려 오해를 살 수가 있고 굳이 해명하려고 하면 유머를 사용하세요."


  정말 혜민 스님 말씀이 딱 들어맞았던 거 같아요. 누군가의 물음에 '인기 많아서 부럽지?'라는 유머로 대응했고, 당황스러움과 분노는 시간이 해결해 주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가공되는 근거 없는 소문들이 누군가의 입과 톡을 거치며 민들레 홀씨처럼 여기저기 흩날리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 심리가 참 희한해요. 당사자가 되면 피해자 코스프레에 여념 없으면서 남 일로 여기면 상당히 무감각해지거든요.


  불륜 주인공 체험을 하며 중요한 교 한 가지 얻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흥미로운 소문이 오른쪽 귀에 도착하면 왼쪽 귀를 활짝 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비효과 예방을 위한 결심이자, 제 자신과의 약속입니다.  


  선견지명 있는 혜민 스님 뜻이었을까요? 1년 정도 지난 후 소설 속 여주인공과 같은 팀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친한 동료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밀봉됐던 소문 상자가 열렸어요. 후배는 기다렸다는 듯 "선배! 제가 훨씬 더 억울한 거 알죠?"라는 말로 모든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아무리 입이 간지러운 소문이라도 '당사자가 사랑하는 내 가족이라면?'이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하고 입을 열지 판단하기 바랍니다. 내 가족이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고통받고, 상처받고, 영문도 모른 채 도덕적, 윤리적 혹은 정신적으로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기억하세요. 당신이 무신경하게 엎지른 물에 누군가는 질식할 수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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