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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Jan 18. 2019

누군가 지어낸 하찮은 규정의 틀

'죽음을 겁내는 바보만 먹는 것'


한참 어린 후배가 애인과 즐겨 찾는 합정동 펍 한곳을 슬쩍 알려줬어요. 분위기 깡패에다 조용하기까지 해서 좋은 사람만 데려가는 아지트로 삼았습니다.


  어느 화창한 연휴에 좋은 기운을 풍기는 후배와 합정동에서 만나 밥을 먹고 맥주 한잔하러 그 펍을 찾았습니다. 밖에서 초인종을 누르면 안에서 열어주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특이한 곳입니다. 오픈 시간은 오후 7시. 조금 이른 시간이라 밖에서 잠깐 기다렸습니다. 후배는 이런 곳이 다 있냐며 신기한 듯 여기저기 둘러봤어요. 그러다 갑자기 소리쳤습니다.


  "형, 여기 40대 이상 출입 금지라는데? 형은 못 들어가는 거 아니야?"


  팔팔한 30대 후배는 깔깔거리며 웃었습니다. 술도 안 마셨는데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어요. 자주 다녔던 곳이었는데, 그런 문구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거든요. 그날에야 비로소 낡고 바랜 글씨가 오래전부터 저를 지켜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죠.


  불현듯 20여 년 전 생일날 호프집에서 쫓겨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스무 번째 생일 파티를 위해 모인 자리에 저를 포함해 생일이 지나지 않은 미성년자가 끼어 있었기 때문이었죠. 법적으로 성인이 아니었기에 겸허히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세월이 한참 지나 불혹을 넘기니 또다시 드나들지 못하는 곳이 생겨났습니다. '인생의 황금기는 고작 20년이란 말인가?'라는 생각에 서글퍼졌어요. 편하게 들락거리던 펍이 갑자기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신분증을 확인하거나 '40대 이상은 나가주세요'라는 말을 하진 않았지만, 숫자라는 기준으로 누군가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현실에 대한 거북함이랄까요.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수도 없이 들었던 얘기가 갑자기 머릿속을 휘저으며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도 마음만은 청춘이야', '마음은 여전히 이십 대라고!' 외치던 어른들 말씀이 진심으로 진심이었다는 걸 비로소 깨달은 거죠. 지금 제 마음도 진심으로 진심이니까요. 나이 늘어도 젊은 시절 추억과 낭만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는 것도 무심한 세월을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그렇게 추억을 곱씹고 또 곱씹는 것이겠죠. 마음이 청춘이라도 청춘 옷차림을 하고 20대가 출몰하는 클럽에 가거나 젊은이가 넘치는 홍대 거리를 누비지는 못할 테니까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세월의 흐름에 동참합니다. 나이에 맞게 옷을 입고, 나이에 맞는 삶을 살고, 그에 맞는 생각과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죠. 그런데 왜 누군가는 굳이 '숫자'라는 합법적이지도 않은 불편한 규정을 만들어 들어대며 나이를 상기시키려 하는 걸까요.


  2000년대 초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카피를 내세운 통신사 광고가 대한민국을 강타한 적 있습니다. 새파란 나이였기 때문에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이제는 이해함을 넘어 진리라고 여기고 싶을 지경입니다. 카카오톡 프로필에 'Life begins at forty'라고 적어놨어요. 진심입니다. 어머니께도 굳이 나이를 상기시켜드릴 필요 없다는 생각에 생신 때 열살 씩 줄여서 초를 꽂아드려요. 어머니가 숫자라는 속임수에 속아 아직 누릴 수 있는 젊음을 아쉽게 흘려 버릴지도 모르니까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바보만이 죽음을 겁낸 나머지 나이를 먹는다."라고 했고, 스웨덴 영화감독 잉그마르 베리만은 "나이가 든다는 것은 거대한 산을 타는 것과 같다. 올라가는 동안 힘이 빠지지만, 동시에 시야는 더욱 자유로워지고, 더 넓어지며, 더 고요해진다."라고 했습니다. 겁 없이 나이를 먹어가는 건, 세상을 배우면서 현명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100세 시대입니다. 굳이 나이라는 숫자를 들먹이며 앞으로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 앞에 미리 벽을 칠 필요가 있을까요? 숫자로 규정지으며 희망의 싹부터 꺾는 현실이 누군가의 도전 기회를 슬금슬금 박탈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 금융회사 신입사원 서류전형에서 나이별로 1점부터 5점까지 차등을 둔 사건처럼요.


  나이를 잊고 산다는 것은 세상을 좀 더 긍정적으로 살아가려는 에너지 넘치는 태도이며, 소소한 기쁨이고, 행복이자 기대입니다. 괜한 숫자에 신경 쓰며 누군가가 지어낸 규정 아닌 틀에 갇혀 살 필요 없습니다.


  15세(지학志學)는 학문에 뜻을 두는 나이, 30세(이립而立)는 가치관을 정립하고 자립하는 나이, 40세(불혹不惑)는 세상일에 쉽게 현혹되지 않는 나이, 50세(지천명知天命)는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 60세(이순耳順)는 말을 들으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나이, 70세(종심從心)는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나이라고 했습니다.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책 <논어> '위정편'에서 공자가 나이에 대해 정의한 내용입니다. 나이마다 숨어 있는 심오한 역할이 있으니, 숫자에 얽매이지 않고 물 흐르듯 순리대로 살아가는 게 가장 현명한 삶을 사는 방법 아닐까요? 'Age is just a number'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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