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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Jul 31. 2019

출근길 비애, 대공감 대방출

'오늘은 집에 가서 꿀잠자요. 우리'


너만 그런 거 아니야. 호들갑 떨지 마!
이렇게 살다 보면 월급 나오잖아.


 년 넘게 회사에 다닐 줄 몰랐다. 비밀이지만 10 년 안에 관둘 심산이었다. 강산이 변하더니 많은 게 달라졌다. 잘릴 때까지 다녀야 할 이유를 100가지는 댈 수 있다. 처자식, 어머니, 꼬미(반견), 전세자금 대출, 카카오뱅크 대출, 일반 대출, 마이너스 통장, 보험 대출, 생활비, 교육비, 카드값, 각종 세금 등. 나열하고 보니 다 돈 때문이다. 서글픈 인생. 여하튼 회사가 좋아서는 절대 아니다. 현실이 고달 파서다.


늘 뻐근한 다리를 이끌고 언제나 뻣뻣한 뒷목을 간신히 떠받들고 지하철에 오른다. 연일 계속되는 동남아 날씨 덕에 역에 도착하 온몸의 땀구멍이 활짝 열린다. 찝찝한 나날들. 하루 3시간 정도 출퇴근 시간이 소요된다. 늘 그렇듯 사람은 많고 자리는 없다. 노약자석 위에 가방을 던지고 중간 출입문에 기댄다. 성능 약한 에어컨 덕에 땀이 스리쓸쩍 흐르기도 하고, 늦어서 뛰는 날에도 땀이 샘솟는다. 생면부지 사람과 땀에 젖은 몸이 스칠 때면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무슨 죄?'라는 푸념이 입속에 맴돈다. 소박한 소망이 있다. '앉아서만 출근하면 행복할 텐데'다. 이렇게 소박한 사람이 되어 간다.


출근길 밝은 표정의 직장인을 만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바삐 움직이는 이들 모습이 활기차 보일 때도 있지만, 나처럼 피곤함에 찌든 모습이 더 친근하다. 출근길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화장하는 사람, 술 냄새 자랑하는 사람, 하늘 향해 입 벌린 직장인, 늠름하게 코 고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다. 사람 구경이 신기하고 재미있을 때도 있지만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을 때가 더 많다. 주변 신경 쓸 여유는 사치다.


'나만 이렇게 살지는 않겠지?'라며 오늘도 나를 위로한다. 누구나 손뼉 치며 공감할 만한 출근길의 비애를 떠올려 봤다. 동병상련 직장인과 생생한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그리고 위로받고 싶다. 서로 위로하고 응원하며 살고 싶다.



하나. 모두의 출근 시간, 모두의 비애


대한민국 직장인은
출퇴근 시간에 이미 삶의 질을 낮춘다.


입사 후 8년 간 통근버스를 이용했다. 출근 시간 만원 버스, 만원 지하철의 무시무시함을 몰랐다. 이사 한 이후 통근 버스를 끊은 지 오래다. BMW(Bus. Metro. Walking)족이 됐다. 언제나 꽉 들어찬 전철, 자리는 고사하고 제대로 서 있을 수만 있어도 다행이다. 허리는 만성 통증에 시달리고, 다리는 점점 더 짧아지는 기분이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와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 전국 직장인 1301명에게 출퇴근 시간 설문조사 실시했다. 경기 지역 직장인이 134.2분(2시간 14분), 인천 100분(1시간 40분), 서울 95.8분(1시간 36분) 순이었다.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직장인의 출퇴근 평균 소요 시간은 115분(1시간 55분)이었다. 안쓰러운 동지 덕에 위로받으며 오늘을 버틴다.


지난해 국가교통 DB에서 발표한 통계자료를 보면 출퇴근 시간이 1시간인 수도권 통근자의 행복 상실의 가치는 월 94만 원으로 분석됐다. 출퇴근 시간 왕복 50분 이상일 경우 삶의 질이 하락했다. 출퇴근 시간이 단축될수록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매해 발표된다. 수도권 직장인 출퇴근 시간은 OECD 국가의 평균 출퇴근 시간(28분)을 한참 웃돈다. 대한민국 직장인은 출퇴근 시간에 이미 삶의 질을 낮춘다. 쓰디쓴 현실이다.


긴 시간 한 자리에 꼼짝없이 서서 출퇴근할 때는 관절이 끊어질 것 같다. 급정거가 많은 버스를 이용할 때는 온몸에 힘이 들어가 근육은 뭉치고 피곤함은 가중된다. 한여름 출근길에는 잘 익은 땀방울이 온몸을 타고 여행을 한다. 주저앉고 싶을 때도 많다. 하지만 견뎌야 한다. 나는 대한민국의 직장인이고, 직장인은 견뎌야 사니까. 나약해질 때 스스로에게 한마디 던지는 건 어떨까.


 "너만 그런 거 아니야. 호들갑 떨지 마! 이렇게 살다 보면 월급 나오잖아"  


서글픔과 초라함을 감추고 버티는 우리는 직장인이다.



둘. 이 나이에 전력 질주라니

 

1분 지각하고 사유서 쓴 경험 있는 사람은 칼 루이스처럼 달릴 수밖에 없다.


통근 버스를 타기 위해, 혹은 전철이나 버스 시간에 맞추려고 아침부터 전력 질주하는 직장인이 많다. 전철이 연착되거나 버스가 막혀 내리자마자 회사까지 전력 질주하기도 한다. 태풍이나 폭설로 도로에 발이 묶일 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발만 동동 구다. 지각이 두려워 전력 질주하면 온종일 다리가 후들후들하고 정신이 혼미하다. 요즘은 전자 시스템(카드키, 지문)으로 출퇴근 체크 회사가 많다. 나처럼 1분 지각하고 사유서 쓴 경험 있는 사람은 칼 루이스처럼 달릴 수밖에 없다.


"XX 씨 나 좀 늦을 거 같은데, 내 컴퓨터 켜고 다이어리 좀 펼쳐줘."


10여 년 전에는 이랬다. 요즘에는 상상할 수 없는 선배 명령이 통하던 시절이다. 놀랍고도 그립다. 인간적이지 않은가. 지각도 지각이지만 상사보다 늦게 출근하면 눈치 보일 때가 있다. 상습 지각러들은 더욱 빨리 달려야 한다. 8시 혹은 9시가 가까워지면 도심 속 건물 주변에서 전력 질주하는 직장인이 많은 이유다. 이 달리기 또한 결국 월급을 향한 질주라는 게 안타깝다.



셋. 가뭄에 콩, 축복? 재앙?


다행인 건, 육감 제대로 발달한
직장인 대부분은 내릴 역에서
자동으로 눈 뜨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장마철 비를 쫄딱 맞고 전철에 올랐다. 내리기 15분 전쯤 자리가 났다. 지친 몸을 그대로 던졌다. 포근했다. 잠이 들었다 '화들짝!' 깨어보니 내려야 할 역 문이 열려있었다. 급하게 뛰어내렸다. 선반에 올려놓은 가방을 외면했다. 찾지 못했다.  


회식으로 만신창이 된 몸을 끌고 출근할 때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자리가 나면 자동으로 '아싸'를 외친다. 앉자마자 꿀잠을 청하는 경우가 많다. 깊은 잠에 빠져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친 경험, 가뭄에 콩 자리에서 떡실신이 돼 지각한 경험, 혹은 비몽사몽 몇 정거장 먼저 내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거다. 아침에 앉아 있는 직장인 중 반은 잠을 청한다. 세상모르고 꿀잠 자는 모습을 보면 '종점까지 가는 거 아니야?' 걱정되기도 한다. 다행인 건, 육감 제대로 발달한 직장인 대부분은 내릴 역에서 자동으로 눈 뜨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전날 아무리 힘든 전투를 치렀어도 다음 날 티 내면 안 되는 우리는 직장인이다. 그래도 내일모레면 월급날이다. 꿀 빨고 잠시 잠깐 힘내요. 우리.




회사가 가까워도보로 출퇴근하거나 고작 5분, 10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들은 이 고통과 슬픔과 서러움을 모른다. 하루의 시작부터 전쟁 치른 동지들. 이유 없이 기분 좋은 퇴근 시간을 기다리며 하루를 버틴다. 이 모든 노력과 시련은 결국 조금이라도 더 퇴근을 오래 하고픈 직장인 마음 아닐까?


"오늘도 정말, 매우 수고했어요!"


성인(26~64세) 수면 권장 시간은 7~9시간이다. 치매 걸릴 확률이 낮아진다고 한다. 출근길의 피로, 상사 스트레스, 업무 스트레스, 회식의 고충을 잠으로 털어 보는 건 어떨까. 밤에는 TV나 유튜브보다 잠이 보약이다. '오늘은 꿀잠을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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