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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Aug 18. 2016

갑자기 나를 싫어하는 선배의 기막힌 사연

"‘직장생활의 반은 눈치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입사 초 잘 챙겨주던 선배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눈도 안 마주쳤다. 3년 뒤 그 이유를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여자


한 회사의 홍보팀에 입사했다. 또래가 많아 남녀불문 금세 친해졌다. 특히 비슷한 업무를 하는 동갑내기 선배(女)와 가깝게 지냈다. 업무도 비슷했고 일도 많았다. 약속은 안 했지만 둘 다 주말 출근이 잦았다. 주말에 나오면 일하고 밥도 먹고 가끔 영화도 봤다. 평일에는 종종 팀원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즐겼다. 업무도 잘 알려주고, 자주 어울리다 보니, 어느새 회사 밖에서도 만나는  친구가 됐다.



그 남자


입사 초 유독 나를 잘 챙기던 다른 팀의 4년 선배(男)가 있었다. 업무를 진행하며 친해졌고, 점심을 함께 먹는 자리도, 술자리 횟수도 점점 늘었다. 선배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 나갈 정도로 선배를 따랐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선배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차가웠다. 처음에는 '기분 안 좋은 일이 있나?'라고 생각하며 넘겼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인사도 받지 않고 눈도 안 마주치고 말을 걸어도 냉랭했다. 딴사람 같았다.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했나?'라는 생각에 당황했다. 선배와는 조금씩 멀어졌다.



경악


3년 후, 우연히 선배가 나를 싫어한 이유를 알고 경악했다. 지난 시간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가며,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친하게 지내던 우리 팀 여선배와 그 선배는 CC였던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 커플. 헤어지고도 일 년이나 지난 후에 알게 됐다.


퍼즐이 맞춰졌다. 내가 입사했을 때 연애 초기였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 놈이 지독하게 자기 여자 친구와 붙어 다니며 밥 먹고, 술 마시고, 주말에도 같이 일하고, 또 밥 먹고, 영화도 보고. 나는 가끔씩 눈치 없이 둘 사이에 끼어 영화 보고, 술 마시고, 노래방에도 가곤 했다. 내가 얼마나 싫었을까. 너무 민망하다. 다시 얼굴이 화끈거린다.



최악


어느 주말, 여 선배와 회사에 나와 일하고 저녁 무렵에 함께 영화를 보러 가던 중이었다. 회사에 나온 남친 선배를 마주친 적 있다. 나는 너무도 당당하게 "선배님, 저희 영화 보러 가는데, 같이 가실래요?"라고 했다. 선배가 왜 똥 씹은 표정을 지었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입사 초 그 선배가 나에게 잘해준 것도 여자 친구 팀 막내여서였다. 그런데 눈치코치 없는 놈이 지나치게 여자 친구랑 붙어 다니니 거슬린 거였다. 선배 여자 선배랑 사귀냐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친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그들. 얼마나 답답했을까.



추억


역시 세월이 약이다. 한 참 지난 뒤 모든 상황이 정리가 된 후 선배와 다시 친해졌다. 선배는 대놓고 "그땐 진짜 싫었다"라는 말을 하며, 이제는 괜찮다고 했다. 과거의 커플은 둘 다 회사를 그만뒀다. 그래도 여전히 연락을 하며 지낸다. 이 사건에 대해 더 이상 말은 안 하지만 세 명의 기억 속 잊지 못할 추억이다.



  

'직장생활의 반은 눈치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연애사뿐만 아니라 업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상황을 잘 살폈다면 눈치를 챘을지도 모른다. 넘어간 100장 이상의 달력 수만큼 연륜이 쌓였다. 눈치가 중요하다는 걸 하루하루 체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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