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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Oct 01. 2019

클럽, 늦잠, 지각, 당신의 이미지는?

'좋은 이미지는 가끔의 실수를 관대하게 품어준다'


살다 보면 의도치 않은 난처한 상황에 직면할 때가 있다. 별생각 없이 한 행동이 난감한 상황을 초래하기도 하고.


입사 후 십여 년 넘는 세월 동안 지각을 두 번 정도 한 거 같다. 지각할 때는 팀장님께 미리 전화 양해를 구했다. 천재지변 등 부득이한 사정이었기 때문에  문제없었고, 싫은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다. 지각 같지 않은 지각이었다.


직장생활 7년 차 때 일이다. 지금 출근 시간은 9시이지만 그 당시는 8시였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간 어느 날. 모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돼 동료들과 술을 마셨다. 흥이 오른 우리는 당시 핫했던 홍대의 한 클럽에 갔다. 8090년대 추억의 가요들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사실 클럽이라고 하기에는 몇% 모자라는 곳이다. 분위기에, 노래에, 술에 취한 나머지 아무 생각 없이 사진을 찍어, 당시 핫했던 카카오스토리에 올렸다. '나 신나게 놀고 있어요'라는 광고를 한 거다.


아내의 댓글을 비롯해 수십 개의 댓글이 도배됐다. 친구들 댓글 속에서 며칠 전 팀에 합류한 직속 사수 차장 댓글이 매직아이처럼 튀어 올랐다.


"집사람 없다고 즐기는 구만…. 너무 늦게 가지 말고…."


아뿔싸. 조금 민망했지만 워낙 성격 좋은 분이라 부담 없이 댓글로 몇 마디 주고받았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2시. '술을 아무리 마셔도 다음 날에는 제일 먼저 출근하자'라는 정신으로 직장생활을 해왔던 나였다. 기분 좋게 잠을 청했다.


아침에 알람 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렸다. 평소 휴대폰을 곁에 두고 자는데, 그날따라 아주 멀리서 들리는 듯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옷 방에 전화기를 두고 와 잠든 거였다. 달려가 휴대폰을 보니 알람이 아니라 전화였다.


"선배! 왜 안 오세요?"”


평소 새벽 6시 20분에 통근버스를 타는데, 8시 3분이었다. 기절초풍노릇. 출근 시간은 이미 지났고 회사까지는 한 시간 넘게 걸린다. 낭패였다. 카카오톡에는 오늘 연차냐는 동료들 톡이 1자가 없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 번호가 찍힌 부재중 전화 3통. 그 틈에 '어제 늦게까지 노는 거 같던데, 출근은 잘했지?'라는 아내의 카톡도 보였다. 일단 팀장님께 부랴부랴 전화해 늦잠을 잤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왕 무서운 우리 팀장님이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천천히 와"라며 쿨하게 응답했다. 일단은 다행.


그런데 나의 전날 행적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차장님이 문제였다. 아니다 다를까 카톡이 왔다.


"어제 신나게 놀았구먼?"


얼굴이 달아올랐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완벽한 이미지 실추였다. "나! 술 마십니다!"라고 떠벌리고 다음 날 지각한 꼴이라니. 한심 그 자체였다. 아침마다 보고하는 일일 업무는 차장님이 대신해줬다. 민망하고 죄송하고 창피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번개처럼 준비하고 회사에 도착하니 9시 3분. 사무실은 고요했다. 가방과 옷가지를 사물함에 넣고 살금살금 걸어 깃털처럼 자리에 앉았다. 어제 같이 술 마신 동료의 메신저가 기다렸다는 듯 날아왔다.


"푹 자고 와서 그런지 너는 하나도 안 피곤해 보인다. 나는 죽겠다. 부럽다."


전날 함께한 또 다른 동료의 서글픈 메시지도 날아들었다.


"나 2분 지각해서 팀장한테 30분 설교 들었잖아. 오바이트 나올 뻔."


더불어 내 상황을 전해 들은 선배들 메시지도 이어졌다.


"너도 그런데 다니냐? 즐거웠냐? 좋은데 있으면 나도 좀 데려가라."


차장님은 전날 이야기는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나만 보면 미소를 지었다. 미소인 듯 미소 아닌 미소 같은 표정이랄까. 차라리 '적당히 좀 놀지. 쯧쯧'이라고 한마디 했으면 마음이 편했으련만. 미소에 담긴 의미에 대해 혼자 10가지 넘는 해석을 한 거 같다. 민망함에 쥐 죽은 듯 하루를 보냈다. 싫은 소리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마음 충분히 불편했다. 그 뒤로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지각하지 않았다.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이럴 때를 대비해 평소 이미지 관리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같은 팀에 하루가 멀다 하고 2~3분 지각해 매번 팀장한테 깨지는 후배가 있었다. 이렇게 상습적인 지각범으로 인식되면 사소한 일에도 욕먹기 일쑤다. 참 억울한 일이다. 나는 다행히 이런 경우가 처음이었다. 덕분에 모두가 조용히 눈 감아줘서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만약 상습범이었다면 "저 놈 또 술 X먹고 늦게 왔네"라는 싫은 소리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평소 차곡차곡 쌓아 놓은 이미지는 가끔의 실수를 관대하게 품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 과도한 SNS 남용은 부적절한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걸 잊지 말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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