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새해가 되자마자 담뱃값이 대폭 올랐다. 이를 대비해 2014년에 몇 보루를 사재기해 놨다. 명목이 분명했다.
"이거만 다 피우면 정말 금연이다."
당시 치솟는 담뱃값에 금연족이 늘고 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됐다.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궁금해 다시 찾아봤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성인 남성 흡연율이 43.2%, '15년 39.4%, '16년 40.7%, '17년 38.1%, '18년 36.7%였다. 여성 흡연율은 '14년 5.7%에서 '18년 7.5%로 소폭 증가했다. 결국 큰 차이 없다는 얘기다.
예나 지금이나 금연은 항상 이슈다. 담배를 일 년, 6개월, 3개월 간 끊어봤다. 금연을 위해 부단히 애썼고, 매일 금연을 부르짖었다. 마음 같아선 확성기에 대고 여기저기 알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병원까지 다녔다. 약을 먹으니 담배 맛이 너무 역해졌다. 약을 끊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던 어느 날 아찔한 경험을 했다.
담배에 환장해 겪은 아찔한 추억
2006년도에 입사했다. 실내에 흡연실이 있었다. 대표이사를 제외한 모든 임직원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그곳에는 각종 정보가 넘쳐났다. 모두가 평등하게 얼굴에 연기를 내뿜는 정겨운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2007년부터 금연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흡연실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여덟 층을 내려가야 했다. 근무 중에 흡연을 위해 5분, 10분 땡땡이치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혹한기가 문제였다. 입김인지 연기인지 모를 희뿌연 김을 순식간에 내뱉고 몸이 얼기 전에 후닥닥 뛰어 들어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실내에서 여유롭게 담배 피우는 선배를 발견했다. 7, 8층 계단 사이였다.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이 적었다. 입사 3년 차 병아리라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추운 겨울 사지로 내몰리는 흡연자들의 동병상련은 모두를 포근하게 감싸 안을 만큼 돈독했다. 어렵지 않게 계단에 입성했다. 그곳은 평소 무뚝뚝한 상무님도 미소를 짓는 3.5차원 정도의 장소였다. 지금 생각하면 미소인지 썩소인지 헷갈리는 민망하기도 한 그런 표정 같기도 하다.
일장춘몽이었다. 위층 회사에서 민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빌딩 관리 요원의 단속이 시작됐다. 호통으로 으름장을 놓으며 흡연자들을 쫓아냈다. 처음에는 모두가 당황했다. 하지만 으름장 외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단속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던 걸 계속했다.
방심도 잠시, 컴플레인이 거세짐에 따라 단속이 대폭 강화됐다. 계단에는 인사 불이익 등의 문구가 적힌 A4 용지가 붙어있었다. 현장을 포착해 사진도 찍고, 이름도 적어갔다. 하나둘 사람들은 사라졌다. 나 역시 정든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야속하게 춥던 어느 날이었다. 너무너무너무 추워서 도저히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실 눈뜨고 동태를 살피고 슬금슬금 계단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7층에 근무하는 차장과 과장이 종이컵을 들고 있었다. 반가웠다. 포근함을 느끼며 한 모금 깊게 빨아들였다. 방심했다. 연속 촬영음이 호통과 함께 울려 퍼졌다. 단속반이었다. 선배들은 번개처럼 사무실로 날아가고, 망연자실한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사진 다 찍혔습니다. 빨리 나오세요!"
단속하던 분은 사무실로 들어가 소리쳤다. 선배들은 영원히 세상에서 사라진 거 같았다. 망신스러운 명장면의 주인공은 나 혼자뿐이었다. 단속반에게 이름과 팀, 연락처 등 신상이 털렸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쳐다보고 수군거렸다. 입사 이후 가장 망신스러운 순간.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했던가?'
단속에 걸린 사람들 명단이 처음으로 인사팀에 전달됐다. 내가 첫 타자. '왜 하필 나야?'라는 원망은 그 어디에다도 할 수 없었다. 간 크고 뻔뻔한 사원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인사팀에서 호출했다. 인자하신 인사 팀장님, 꾸중보다는 담배 피우다 걸린 불량 학생을 선도하듯 따듯한 어조로 훈계해 주셨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자리로 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화끈한 팀장의 더 화끈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 한 번만 더 걸리면 확! 잘라 버린다!"
평소에도 우렁찬 목소리 때문에 말인지, 화인지 헷갈리는 팀장이다. 사무실 맨 끝에 있는 사람도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목소리로 경각심을 심어주셨다.
이런 소문은 5G급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메신저에 불이 났다. '형, 선배, OO야, 담배 끊어라!'라는 메시지가 다수였다. 수십 개의 'ㅋㅋㅋㅋㅋ'로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회사 흡연자를 대표해서 망신을 당했다. 당장 담배를 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이런 큰일을 겪은 후에도 추위와 싸우며 열심히 피우고 또 피웠다. 그때는.
'왜 맨날 나만 재수 없게 걸릴까'라고 생각했다. 정리 정돈을 잘하는 나인데, 회사의 보안 점검에도 유독 잘 걸리는 나다. 늘 머피의 법칙 주인공이라고 자부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아니었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라는 사실을 세월을 통해 깨달았다. '금연 공간에서 상습적으로 담배를 피웠으니 걸린 거잖아?' 맞다. 그랬다. 잘못했다. '사물함을 안 잠그고 문서를 방치한 것도 너잖아?' 맞다. 결국 나였다. 모두 내 잘못이었다.
'왜 나한테만 그래!'라는 마음은 치졸한 변명이었다. 작은 사건이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2016년부터 금연 중이다. 한 대도 피우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날 때 한결 개운하다. 비싼 담뱃값을 절약할 수 있어서 좋다. 엄마, 아내, 아이들 걱정을 덜어줘서 좋다. 여름에 윗집에서 소리를 안 질러서 좋다.(한여름 에어컨 실외기실에서 남몰래 담배를 피우다 윗집에서 소리를 지른 적이 왕왕 있다) 그리고 손에서 냄새가 안 나서 정말 좋다. 무엇보다도 담배 피우다 된통 걸렸던 그 순간이 이제는 어슴푸레한 추억이라는 게 더더욱 좋다.
"와~ 담배를 끊다니. 정말 독한 놈이다."라는 말을 들어도 좋다.
길을 걸을 때 어디선가 담배 연기가 날아오면 인상을 쓰면서 손바닥을 코앞에 대고 마구 흔든다. 마치 담배를 한 번도 피워본 적 없는 사람처럼. 비흡연자라서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