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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Aug 19. 2019

자존감 도둑과 젊은 꼰대

'일순간에 나를 무능하게 만드는 사람'


말 몇 마디로 상대를 주눅 들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자의 생각을 집요하게 강요하는 사람. 자신 무조건 옳다 고집부리는 사람. 한마디로 자기만 잘났다고 착각하는 사람. 그 강도가 너무 세서 쉽게 무너질 때가 왕왕 있다.  


일도 잘하고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후배. 누구 눈치 보는 성격도 아니고 자존감도 높다. 그렇지만 그에게도 천적이 있다.


"와~ 나는 진짜 XXX 팀장님이랑 얘기하면 자존감이 바닥으로 뚝 떨어진다니까요. 젊은척하면서 말하는 건 완전 꼰대예요."


후배는 그 사람을 가리켜 '자존감 도둑'이자 '젊은 꼰대'라고 명명했다. 그 팀장의 '답정너' 명성을 경험으로 익혔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순식간에 상대 기분을 상하게 하는 능력자도 있고, 말을 하면 할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도 있다. 같은 말도 어떤 식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전달 지수가 달라진다. 그런데 자신의 말 한마디가 상대의 기분을 넘어 자존감에도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참 많다.


최근 상사가 바뀐 동료가 말했다.


"직장 생활하면서 이렇게 나 자신이 무능하게 느껴진 적이 없어. 자존감이 진짜 바닥을 뚫고 내려가려고 해서 간신히 붙잡고 있는 중이야."


10여 년간 모시던 상사와 판이하게 다른 성향의 상사를 만났다. 업무에서의 유능함 여부를 떠나 표현 방식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보고 하면 "그래"가 아니라 "그래?"라는 의심을 먼저 내보인다고 했다. "네가 몰라서 그러는 거야. 너보다 내가 더 잘 알지"라는 말은 담당자를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습관적인 의심과 무시하는 말은 업무를 정체시키고, 자신의 업무를 부정당한 담당자는 의욕을 상실한다. 이런 와중에 단합을 위한 회식과 티타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함께 다시 생각해 보자' 또는 '수고했어' 한마디면 충분한데, '내가 다 해봤던 거란 말이야. 네가 뭘 알아?'가 웬 말.


<이미지 출처 : pixabay>


한 상사는 선배에게 머리가 나쁘다며 회사 나가서 XX 장사나 하라고 했고, 유학파라 한글을 모르냐고 윽박질렀다. "이런 머리로 어떻게 유학을 했냐?"라는 친절한 P.S.도 덧붙였다. 부하직원의 멘탈을 쥐고 흔들며, 자존감을 파먹는 '자존감 도둑'의 전형적인 행동이었다.


소통의 시대이지만, 소통의 복면을 쓴 불통은 여전하다. 여기저기에서 '소통해라', '젊은 세대를 이해해라'는 말이 넘치는 시대에 정작 그들은 자가당착에 빠져 헤매고 있다. 대화를 많이 하자고 해놓고, 본인이 하고 싶은 온갖 말을 다 쏟아붓는다. 그러고 나서 소통했다는 착각에 흐뭇해한다. 부하직원에게 비싼 저녁을 사주고, 9시 전에 회식을 끝냈다고 자신은 젊은 마인드라며 자화자찬하기도 한다. 회식 내내 상사 모노드라마를 감상한 직원들 좀이 쑤셨다는 걸 상상조차 못 한다. 차세대 주자인 밀레니얼 세대를 이해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고리타분한 세대에 집착하는 상사가 많다.


내가 자존감에 상처 입기 싫은 것처럼 상대도 마찬가지다. 말이라는 흉기로 상대의 자존감을 위협하고 있지는 않는지, 상대를 이해한다고 착각하는 젊은 꼰대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자가진단이 필요할 때다. 그래야 먼 훗날 저들처럼 누군가의 자존감을 갉아먹지는 않을 테니까.


평소 동글동글한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실패할 때도 물론 많지만, 연습에 연습, 복습에 복습을 거듭하는 중이다. 자꾸 반복하고 노력하다 보면 마음에서 머리에서 정말로 기분 좋은 모양의 말만 생산해 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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