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이드id Sep 09. 2019

누나에게 전하는 뒤늦은 사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누나 미안했어.


18년 전 헤어진 누나에게 갑자기 미안했다. 누나랑은 25년을 함께 살고 헤어졌다. 매일 마주치던 누나를 이제는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 까다. 각자 가정을 꾸리고 서로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삶을 살아간다. 그런 누나에게 뜬금없는 미안함을 느꼈다.


딸아이를 쉬지 않고 괴롭히는 아들의 모습에서 과거의 내가 튀어 올랐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왔다.


"아들아, 네가 누나한테 하는 모습 보니까. 아빠가 고모한테 너무 미안해진다. 지금이라도 사과해야겠어."

"네?"

"아니야..."


헛웃음을 삼켰다.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의 비명과 고함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3학년인 아들이 누나 허벅지에 앉아서 방귀를 뀌고 도망쳤다. 내가 대학생 때까지 누나한테 했던 짓이었다. 그걸 본 적도 없는 놈이 어떻게 똑같은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유전자의 힘일까. 궁금했다. 아들의 행동이 도화선이 돼 수십 년 전 일들이 번개처럼 나를 때렸다.


누나가 초등학교 4학년, 나는 1학년 때였다. 다림질하던 아빠가 누나한테 물 한 그릇 떠오라고 했다. 스팀다리미가 없던 시절에는 대접에 물을 담아 손으로 뿌리면서 옷을 다렸다. 누나의 동선을 파악해 모퉁이에 숨었다. 누나가 코너를 돌 때 최선을 다해 놀라게 했다. 그릇은 잠시 허공에 머물다 아빠를 향했다. 옷이 아닌 아빠가 물을 뒤집어썼다. 가해자는 나였는데, 선의의 피해자인 누나가 상위 피해자인 아빠에게 혼났다. 조심성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미안해야 하는데 나는 웃으며 누나를 놀렸다.


남매의 싸움을 중재할 때는 늘 조심한다. 이처럼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누나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제삼자가 돼 아들이 누나한테 하는 짓을 보면서 딸아이의 비명과 고함을 이해하게 됐다. 내 어릴 적 모습, 누나의 모습이다. 그래서 아들에게 소리 지르고 화내는 딸내미를 무조건 혼낼 수 없다. 개구쟁이 동생을 둔 맏이의 비애라는 걸 잘 아니까.



누나는 소리를 많이 질렀다. 발길질도 빠르게 잘했다. 물론 그 모든 건 나만을 향했다. 누나의 비명과 환성을 만들어낸 유일한 사람은 나였고, 누나의 발에 차인 사람 내가 유일다. 가끔 엄마는 우스갯소리로 내가 누나 성질을 버려놨다고 말하곤 했다. 누나에게, 엄마에게 적당히 까불라고, 능글맞다고, 화를 돋운다고, 깐족거린다는 말을 자주 듣던 나였다.


한 번은 누나가 500원짜리 동전이 가득 담긴 돼지 저금통을 거실에 집어던졌다. 다 쓰라고 소리를 질렀다. 누나가 옷장에 숨겨둔 저금통 구멍을 벌려 몰래몰래 빼 쓰던 걸 들켜서다. 그런데 성질부린다고 누나가 엄마한테 혼났다. 군대에 다녀와서도 누나 허벅지에 대고 방귀를 뀌었다. 누나는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웃었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 누나를 괴롭히는 게 그저 즐거웠다. 누나를 참 많이 울리고 화나게 했다.


사실 누나는 참 든든한 존재였다. 내 우상이기도 했다. 공부도 운동도 뭐든 잘했고 어른스러웠다. 심지어는 생에게 모든 걸 양보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누나와 비교되는 열등감을 그런 식으로 표출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누나를 향한 고해성사.


츤데레 같은 누나에게 많이 의지했다. 누나는 학교 숙제도 많이 도와줬다. 고등학생 시절, 걱정만 하다 잠든 동생을 위해 숙제를 대신해기도 했다. 고마운 일이 참 많았는데, 나는 괴롭 일만 오른다.


부모님이 잘 가꾼 우리 가족은 다시 결혼이라는 낭만을 따라 뿔뿔이 흩어졌다. 그렇지만 매일 안부를 주고받을 만큼 가깝게 지낸다. 누나는 아내를 향한 내 투정도 먹고사는 근심 걱정도 아주 잘 들어준다. 더군다나 내가 책을 쓸 때면 친절하게 원고 교정 봐준다. 따끔한 조언도 서슴없다. 가끔 용돈도 준다. 여전히 나는 누나에게 의지하며 산다. 달라진 건 더는 누나를 괴롭히지 않는다는 거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어릴 적 누나와의 일이 자주 떠오른다. 한 집에서 부대끼며 살던 누나와 떨어져 살지만 수십 년간 쌓아온 방울방울의 추억은 노년에도 잊히지 않을 것 같다.


한 번은 누나랑 신나게 싸우다 아빠한테 종아리를 맞았다. 아빠는 잘못만 뉘우치면 된다고 늘 종아리에 신문지를 대고 때렸다. 하나도 안 아픈데 아픈 척 연기하는 게 더 어려웠다. 그러다 누나와 눈이 마주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즐겁고 재미있는 추억도 많다. 몽글몽글 아련하게 피어나는 누나와 함께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그립다.


출근길 울려 퍼진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라는 노랫말이 유난히 가슴에 와 닿은 아침이었다. 누나 미안했어.




매거진의 이전글 휴가 마치고 '이제 좀 쉬어야지'하는 웃픈 현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