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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Dec 10. 2019

근거 없는 당연함에 시나브로 물든 사람들

'당연함은 어쩌면 누군가의 기대고 바람이고 강요였다'


"왜 그렇게 짜증을 내?"

"아니 너무 당연한 걸 물어봐서요."


새파란 후배를 면전에 둔 조금 덜 파란 후배가 말했다. 당연한 걸 물은 후배는 난처한 표정이었다. 아득한 시절이 떠올랐다. 몰라서 물어보는 내게 선배는 뭘 그렇게 당연한 걸 묻냐는 듯한 경멸 어린 시선을 보냈다. "진짜 몰라서 물어?", "당연한 거 아니야?"라는 짜증 섞인 답변을 던지기도 했다. 점점 소심해 졌다.


'당연한 걸 묻는다'는 표현에는 '너 왜 그렇게 무식해?'라는 의미, 혹은 '귀찮게 하지 마' 또는 '찾아보면 다 알 수 있는 거 아냐?'라는 충고담겼다. '내가 부족한가? 무식한가?'라는 생각에 한없이 작아졌던, 눈치 보기 시작했던 기억. 그저 '다 내 부족함 때문입니다'라며 초라한 나를 자책했다. 억울한 일이었다.


"당연?" 


도대체 뭐가 당연 건지. 당연한 건 없다. 후배가 묻는 걸 언제나 환영한다. 배우려는 의지고 열정이고 노력하는 발버둥이다. 그런데 왜 누군가는 옆 사람도 불쾌한 못마땅함을 발설하며 '당연함'을 강조까. 당연하지 않은 것 당연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다.


후배니까 고생해야지, 선배니까 갈궈도 돼, 여자니까 애 봐야지, 맏이니까 양보해야지, 아빠는 원래 외로운 거야, 자식은 원래 그래, 남자는 울면 안 돼, 여자는 참고 살아야지, 젊은 사람이 양보해야지, 어른이니까 함부로 해도 돼.


<이미지 출처 : pixabay>


후배니까, 아내니까, 남편이니까, 여자니까, 남자니까로 종결되는 수많은 당연함에 파묻혀 살고 있다.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 모르는 온갖 일들근거 없는 '당연함' 탈을 뒤집어쓰고 삶에 스몄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갈등을 조장한다.


인간관계를 수직 서열화하려는 당연한 마음의 눈이 문제다. 인간과 인간은 평등하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당연함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후배는 처음이라 모다. 애매한 일은 선배 확인을 받고 싶이 크다. '내가 후임 때, 후배 때 고생했으니까. 너도 당연히'라는 마음은 독이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인식을 챙기는 게 먼저다. 부부는 당연함을 근거로 일을 떠넘기려고 함께 사는 게 아니다. 새로운 인생을 개척기 위 관계를 맺은 거다. 시시 때대로 튀어나오는 남녀 역할 구분도 구태의연한 발상이다.


남자는 당연히 공대를 가야 한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꽃 같은 20대를 안갯속에서 헤다. 부지불식간에 잠식한 당연함 어쩌면 누군가의 기대고 바람이고 강요다. 내 삶이다. 타인의 당연함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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