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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Feb 03. 2020

너는 후련하고 나는 속 터지고

"이도 저도 아닌 말은 넣어 두세요!"


다 보면 내 맘 같지 않은 상황을 마주한다. 내 맘 같지 않은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내 맘과 다른 말을 듣기도 한다.

 

다른 지역에 근무하던 선배와 몇 년 만에 마주쳤다. 반가웠다. 한걸음에 달려갔다.


"잘 지내시죠?"

"너 왜 이렇게 늙었어? 많이 힘들어?"

"요즘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어요. 식사나 한 번 하시죠."


이 나이에 늙는 건 당연한 일이다. 반대 귀로 흘렸다.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며칠 뒤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왜 이렇게 늙었어?'라는 말이 반찬이었다. 거울을 보면서 '늙긴 늙었지. 내 나이가 몇 갠데' 안 그래도 요즘 부쩍 느끼는 생각을 선배가 계속 갱신해 줬다.


다음 날 점심 식사 후 커피숍에 있는 선배와 우연히 마주쳤다. 커피를 기다리다 잠깐 다가갔다. 선배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동료들에서 말했다.


"세월을 정통으로 맞았어. 책 써서 그런 거야?"

"선배, 혹시 제 십 년 전 모습이랑 비교하는 거 아니에요?"


방긋 웃어 주고 돌아섰다. 이쯤 되면 작정한 디스였다. 뒤에서 일행과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넌 안 늙었냐?"

"사람들이 나보고 회춘한다고 그러던데?"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나이 먹으니 컨디션에 따라 얼굴이나 몸 상태가 수시로 달라진다. 두 번째는 웃어넘겼다. 사십 대 중반에 안 늙 게 이상한 일이다. 세 번째 들으니 열 받았다. 듣기 싫은 말을 왜 앵무새처럼 조잘거릴까. 이제는 선배를 마주칠 때마다 '그 말'이 떠올랐다. 반복 학습 덕이다.


엄마 친구 중에 듣기 싫은 말만 골라하는 아줌마 있다. 엄마한테 키도 작고 얼굴도 까맣고 예쁘지도 않다는 말을 수시로 한다. 엄마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한테까지 막말하는 건 참지 않았다.


"너는 친구들 좋은 점은 안 보이냐? 어떻게 맨날 그리 흉만 보냐?"


아주머니는 당분간 엄마를 찾지 않았다. 한 번은 집에 놀러 와 동네 사람들 욕만 하는 이웃집 아주머니를 쫓아내기도 했다. "와서 맨날 그런 소리나 할 거면 오지 말랬더니 안 오네." 엄마는 좋은 말이 씨가 된다고 믿는다. 한창 속을 썩일 때도 '썩을 놈'이라는 말 대신 '성공할 놈'이라고 했다.


사람 성격은 제각각이다. 말을 쉽게 뱉는 사람은 상대 성격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한다. 속마음을 드러내야 직성 풀리는 사람도 후련함에 앞서 상대 기분을 헤아려야 한다. 남을 깎아내려야 내가 올라간다는 착각도 버려야 한다. 가까운 관계라고 불쾌한 말을 서슴없이 해서도 안 된다. 모두 착각이고 적이 되는 지름길이다. 검은 말은 엎어치나 메치나 검다.


충고나 조언은 나를 돌아보며 점검하는 좋은 기회다. 이도 저도 아닌 늙고 못생겼다는 무가치한 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비슷한 말로 받아치자니 유치하고 외모를 고치는 건 불가능하다. 가치 없는 건 버리면 그만이다. 의미 없이 허공으로 흩어질 말은 애초에 내뱉지 않는 게 낫다. 소통 에너지 낭비다. 누군가는 후련하지만 누군가는 기분 잡치는 결론에 도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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