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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Jul 14. 2020

'다들 그렇게 해요'라는 무거운 불편함

"원래가 어딨냐? 힘없는 사람만 당하는 거지!"


"6시간 동안 어떻게 항암 주사를 대기실에 앉아서 맞아요?"

"다들 그렇게 하세요."


항암 2차 날이었다. 간호사는 자리가 나지 않으면 대기실에서 계속 맞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내는 당황했다. 간호사는 흔한 일에 호들갑 떤다는 듯 고개도 들지 않고 답했다. 어머니 허리가 좋지 않아 오래 못 앉아 계시니 다른 날 오면 안 되냐고 물었다. 항암은 정해진 날 받아야 한다고 거절했다. 간이침대라도 없냐고 물었다. 없다는 대답이 다였다. 모든 물음에 되돌이표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아내는 순간 자신이 진상이 된 분위기를 느꼈다. 멈췄다. 더 문제 삼으면 시어머니가 피해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을 닫았다.




엄마가 6시간이나 되는 1차 항암 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3주가 흘렀다. 아내가 엄마를 모시고 2차 치료를 받으러 갔다. 예약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간단한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혈액 검사 결과를 보고 2차 항암제를 맞자고 했다. 몸은 회사에 있었지만, '이번에도 잘 견디셔야 할 텐데'라는 걱정이 온몸을 가득 채웠다.


아내한테 연락이 왔다. 온몸의 걱정을 분노로 바꾸는 일이 벌어졌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중 날벼락같은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침대가 부족하니 대기실 의자에서 주사를 맞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당황스러운 상황도 잠시, 대기실에 점점 환자가 늘었고,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뻥 뚫린 공간에서 항암 주사를 맞는 환자가 눈에 띄었다. 심지어 자리가 없어, 서서 주사를 맞는 환자까지 생겨났다. 보호자까지 동행하는 통에 사회적 거리두기도 남의 나라 일이었다. '암환자들이 이런 취급을 받는구나'라는 서러운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믿기지 않았다. 분노는 다음이고 현실을 정확하게 알고 싶었다. 엄마가 암 진단받은 날 가입한 카페에 글을 남겼다. 14개의 댓글이 달렸다. 한 명 빼고는 모두 겪은 흔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의자에서 항암제를 맞다 실신했다는 글도 있었다. 간호사한테 자리 나면 옮겨달라고 계속 얘기하라는 조언이 가장 현실적인 답이었다. 동병상련의 환자와 가족의 망연자실함이 뼈에 박혔다. 모두에게 익숙한 일이라니. '처음에는 이들도 분노한 일이겠지'라는 생각에 서글펐다. 몸 아픈 환자와 마음 아픈 가족이 죄인인 차가운 현실.    


어제오늘 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를 검색했다. 2019년 3월 <자리 없어 소파‧대기실에 앉아 항암제 맞는 환자들>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였다.


외래에서 항암주사를 맞는 일부 암환자들이 병상이 아닌 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간 협소 문제로 베드(병상) 대신 주사 치료실 내부에 비치해 둔 소파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대기공간에서 맞는 경우도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전예약 또는 익일 예약의 경우 우선 베드로 배정하고, 그 외에는 주사실 입실 순서대로 베드를 배정한다. 베드가 차면 1인용 소파에 배정하는데, 1인용 소파마저 자리가 없으면 대기시간이 발생한다. 문제는 암환자의 항암주사 투여 시간이 항암제별로 다르고, 길게는 6시간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대기시간도 그 이상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치료를 위해 지방에서 온 환자들이 많아 1일 이상 대기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강해 대기실에서 주사를 맞기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환자의 입장과 병원의 입장을 모두 담은 기사다. 여러 병원 관계자 인터뷰 내용은 일관됐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노력하고 있다"는 마무리. 환자의 불편함이 거창한 요구처럼 느껴졌다. 과연 관계자들의 노력은 언제쯤 결실을 맺을까. 과연 자신의 가족에게도 대기실에 앉아 6시간 동안 항암제를 맞으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코로나 19에 맞서 모범적으로 고군분투 중인 의료 선진국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대한민국에서 당연하게 벌어지는 이런 불편한 상황도 신속하게 해결돼야 할 과제라고 생각했다. 아내에게 사진과 영상을 찍어달라고 했다. 한 언론사 제보 사이트를 열고 장문의 글을 적었다. 잠시 뒤 아내가 그랬다. "못 하겠어."'


"어머니한테 피해 가면 어떻게 해. 서서 맞는 아저씨도 있는데... 조금 기다려 보자."


냉랭했던 감정이 깨지면서 마음이 좀 누그러 졌다. 불현듯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남 모르는 각자의 사연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건강할 때는 음지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마음을 몰랐다. 엄마와 함께 음지의 세계에 들어오고 나서 알게 됐다. 주변의 많은 사람이 각자의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다만 내 마음이, 내 눈이 그동안 그곳을 향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내 일이 되고, 내 엄마가 고통을 겪으니 비로소 보이는 것이 많았다.


아내 덕에 감정에 치우친 제보 글을 멈췄다. 울컥한 마음에 휘갈기는 제보는 하지 않았다. 분노는 가셨지만 현실은 그대로였다. 대신 서러운 감정에 복잡한 심경을 더해 브런치에 글을 담았다. 혼자서 바꿀 수 없는 현실보다 상처 입었을 엄마와 가족의 마음을 더 헤아리기로 했다.


엄마가 큰 병에 걸리니 알게 됐다. 세상에는 아픈 사람이 참 많다는 사실을. 그리고 병보다 환자를 더 아프게 하는 건, 보호자 마음을 더 찢어 놓는 건, 환자를 무감각하게 대하는 사람들의 사소한 태도라는 걸.


대학병원 다니는 친구에게 물었다.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원래 그렇게 해. 우리 병원도."

"원래가 어딨냐? 힘없는 사람만 당하는 거지!"


괜한 친구에게 한소리 했지만 바람처럼 스쳐 지날 일은 아니다. 나와 가족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현실인 만큼, 의료계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인터뷰를 위한 말뿐만이 아닌 환자와 가족이 체감할 수 있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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