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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Dec 02. 2020

남 인생 청강에 여념 없는 일상

"야! 나 좀 그만 보고 너를 봐. 니 인생이나 신경 써"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게 보고, 마지막 대사를 듣는 순간 멈칫했다. 휴대폰을 꺼내 메모장에 대사를 적 가슴에도 새겼다.




오랜만에 친구들 모임에 나갔다. 워낙 어린 시절부터 어울리던 친구들이라 언제나 격의 없는 이야기가 넘친다. 칭찬은 별로 없고 짓궂은 농담이 난무한다. 술 없이도 신나 시간을 보는 친구들이다.


최근 모임은 좀 달랐다. 아파트값 폭등 청약 이야기가 부록처럼 따라붙었다. 한 친구가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청약에 당첨됐다. 요즘 청약은 로또다. 주인공인 친구의 당첨 무용담이 한참 이어졌다. 부럽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심지어는 "아 OO이랑 결혼할 걸!"이라는 농담도 들렸다. 부러웠다. '여태껏 뭐 한 거지? 나는'이라는 씁쓸한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외부 사람들을 만나도 가파르게 오르는 아파트 하나 부여잡지 못한 현실에 의기소침해질 때가 있다. 타인의 집 자랑 돈 자랑에 마음이 한없이 휩쓸릴 때가 있다. '폭등하는 전셋값은 어떻게 당하지?' 아등바등 사는데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삶은 불안함 그 자체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시대, 잘 나가는 이들은 구조조정이라는 쓰나미에서 비껴가겠지?'라는 생각을 한다. 내 인생은 뒷전, 나와 상관없는 인생을 사는 이들을 자주 떠올린다.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 사회에서 잘 나가는 친구의 삶을 훔쳐보기도 한다.


사는 것이 버거운 것은
자기 자신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칼 융은 사는 것이 버거운 것은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해서라고 했다. 엄연한 자신을 두고 자꾸 남을 바라보는 심리는 자신의 마음을 더욱 무겁고 비참하게 만다.


부럽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고 산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딸아이 친구 엄마가 놀러 왔다. 새벽에 나가 밤늦게 퇴근하는 나를 보며 "참 아등바등 사시네요"라며 안타까워했다. 의사인 남편은 아이들 등원까지 다 시키고 출근해 5시면 퇴근한다고 했다. 악의는 없었다. 그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읊은 것뿐이었다. 기분 나쁜 건 분명했지만 '부러운 삶이다'라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타인의 삶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부러워하며 스스로를 절벽으로 밀어내는 삶이다.


독립영화 <거짓말>의 주인공 아영은 풍족한 타인의 삶이 부러워, 처절한 자신의 일상을 모두 거짓으로 꾸민다. 점심시간이면 사지도 못하는 외제차를 보러 다니고, 동료들에게 부러움 사고 싶어 거짓말을 일삼는다. 고급 아파트를 보러 가기 위해 명품 옷을 훔치고, 고가의 가전제품을 구매하고 환불하는 일을 반복한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남에게 받는 시선에 갇혀버렸다.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한 삶에 익숙해졌다.


직장에서는 남 꼬투리 잡는 말을 열심히 퍼 나르며 험담에 동참하고, 시기 질투를 일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남을 끌어내려야 내가 조금이라도 나아 보이지 않을까라는 망상이 만든 일탈이다. <삼진기업 영어토익반>은 여상을 나온 고졸 사무직 여직원들의 고군분투를 다룬 영화다. 대졸 공채 여직원이 자신보다 능력 있는 고졸 여직원을 집요하게 괴롭힌다. 괴롭힘 당하던 여직원이 참을 만큼 참다가 한마디 쏴 붙인다.


야! 나 좀 그만 보고 너를 봐.
니 인생이나 신경 써.


부러움에 휩싸여 몸 둘 바를 모르는 현대인에게, 남의 인생 청강에 여념 없는 나에게 던지는 날카로운 외침이었다. 기분 좋은 따끔한 충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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