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드id Sep 03. 2021

경험하지 못한 슬픔에 대한 편견

'가늠할 수 없는 아픔도 있다'


엄마 장례를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한 내게 누군가 말했다.


"그래도 그동안 마음의 준비를 해서 좀 괜찮지 않으셨어요?"


'괜찮다'라는 말에 심장이 울렸다. 이미 예견된 이별, 충격이 덜하지 않았냐는 위로였다. 무슨 의미인지 안다. 이러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이들의 슬픔에 대한 무지도 이해할 수 있다. 경험하지 못한 아픔 일 뿐이다. 환자와 가족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 외롭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는 , 겪어보지 않은 이들이 그 마음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함께 살던 할머니가 사라져도 아이들 일상은 변함없이 즐겁게 흐른다. 나무라는 게 아니라 체감하는 슬픔의 강도는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슬픔은 어느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 없다.


십수 년 전 새벽에 아빠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평생 불구가 되어도 좋다고, 식물인간이 되어도 살아서 곁에만 있어달라고 빌었다.


삶과 죽음은 흔하디 흔한 현실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나 자신이나 가족이라면 어떤 기분일지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타인의 죽음을 목도하는 얕은 슬픔이 담긴 간접 경험으로는 십 분의 일도 헤아릴 수 없 것이다.


엄마와 함께 고작 15개월 간 투병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누나와 교대로 병실에 머물면서도, 같은 병실 환자가 하나둘 떠나도 내 엄마가 허망하게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 적 없다.


온전 의식이 서서히 희미해고 있음에도 남몰래 기적을 바랐다. 겉으로와는 달리 의사 말을 부정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는 가족의 마음 부림이다.


힘든 수술을 마쳤을 때 병이 나을 줄 알았다. 항암제가 잘 들어맞을 것 같았다. 방사선 치료가 끝나면 다시 건강해지리라 믿었다. '깨끗하네요'라는 의사의 한마디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고작 3개월 만에 재발했을 땐 항암제를 바꾸면 차도가 있을 줄 알았다. 3개월 정도 지나면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야 할 거라는 의사의 말을 새겨듣지 않았다.


항암에 좋다는 녹즙을 마시고, 구충제를 먹고, 올리브 오일을 들이켜면 점점 나아질 줄 알았다.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늘어날 줄 알았다.


결국 평온한 죽음을 맞기 위해 호스피스 병동을 찾았지만, 호전을 보이는 모습에 퇴원하는 엄마 모습을 상상하고, 다시 함께 살면서 티격태격하는 일상을 그다.


엄마는 하루아침에 먼지처럼 사라졌다. 15개월 간의 투병 생활은 흔히들 생각하는 준비기간이 아니다. 희망으로 가득 찬 하루하루의 기적이었다.  


호상이라는 단어가 있다는 건 세상에 분명 행인 이별도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멀쩡하고 건강하던 엄마가 고작 1년 3개월 만에 세상에서 사라진 일은 여전히 사무치고 억울하고 분 충격이다.


그깟 눈물 몇 방울로, 오열로, 사랑다는 통곡으로는 아무것도 해소되지 않았다. 이별 준비 완성의 기간을 고작 15개월에 담는 건 너무 비참다. 말도 안 되는 현실이다.

   

사회에서 만난 한 선배가 부고 소식에 실컷 슬퍼하라는 위로와 함께 "문득문득 가슴이 아릴 겁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가장 현실적인 위로라는 걸 알았다.


아빠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을 경험했음에도, 엄마와의 이별 상상하지 않았다.


모든 이별에 스민 아픔과 슬의 강도는 제각각일 것이다. 나이를 먹었어도 엄마를 잃은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경험하지 못한 슬픔에 대한 편견, 마음 슬픈 날이었다. '가늠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해서는 적당한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현명한 위로가 아닐까' 각해본다. 


엄마는 지난 8월 13일 떠나셨습니다. 영원히. 누나와 떠나는 엄마 손을 꼭 잡아드렸습니다. 함께하는 동안 사랑한다고, 다음에도 엄마로 만나자고 실컷 외쳤습니다. 그래도 슬프고 또 슬펐고, 여전히 슬픕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